우리수퍼는 나와 남편이 사는 원룸 바로 맞은편에 있다. 우리 수퍼 아저씨는 약간 벗겨진 머리와 작은 눈에 늘 등산복 차림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산에 가는 적이 없다. 아침 일곱시쯤 가게 문을 열고 열두시에 문을 닫는다. 오전에 가게문을 열고 물건을 들여놓은 다음에는 오후에는 아줌마가 와서 가게를 보고 다시 저녁이 되면 아저씨가 마감때까지 일한다. 정말 부지런하게 사는 부부 같다.
나는 박쥐처럼 편의점과 수퍼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용한다. 삼각김밥을 사거나 샌드위치 커피 종류를 살 때는 편의점에 간다. 그리고 콩나물과 두부 같은 걸 살 때는 수퍼에 간다. 공교롭게도 그 두 가게는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사실 편의점에 들어갈 때 굉장히 신경 쓰인다. 수퍼 아저씨는 자주 밖에 나와서 계속 편의점 쪽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저씨가 보고 있는 걸 알면서 편의점에 들어가는 게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언젠가는 편의점의 통유리 앞에서 안에 있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꼴을 보았다. 아저씨는 나와 마주치고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수퍼 안으로 들어갔다. 수퍼 아저씨의 노골적인 호기심이 싫다. 남의 가게를 들여다보는 것, 여자들이 지나가면 대놓고 훑어보는 거, 여름에는 아예 플라스틱 의자를 밖에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언젠가 여름에는 술이 취해서 옆 치킨 집으로 들어가는 미니스커트 입은 어떤 젊은 여자애를 바짝 쫓아가는 걸 본 적도 있다. 욕구 불만에 쌓여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군가 애완용 개를 안고 왔는데 건드리면서 “이 개새끼가.” 하고 씹어뱉듯이 말을 던지는 거였다. 그걸 본 후로 정이 다 떨어졌다.
어느 날 동네에 새로 생긴 큰 마트에서 한바구니 장을 봐 오다가 그만 수퍼 아저씨와 마주쳤다. 수퍼 아저씨는 내가 죄를 지은 것처럼 나의 비닐봉지를 노려보았다. 대파와 고기 등등해서 검은 봉지는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아저씨는 무표정하게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난 아저씨가 보이자 당황했지만 이미 피할 수는 없었다. 거리가 가까워올수록 오히려 오기가 솟았다.
아, 왜 쳐다보는데. 재수 없는 새끼.
하는 마음에 고개를 꼿꼿이 들고 가슴을 폈다. 그리고 아저씨를 째려보았다.
아저씨의 눈은 날 향한 게 아니었다. 내 검은 봉지를 샅샅히 훑고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물건이 튀어나온 정도와 각도로 살펴보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난 절대 그 수퍼에 가지 않는다. 혹시라도 갈 일이 생기면 다른 수퍼에서 사거나 편의점에서 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수퍼 앞에서 그를 보았다. 그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리오라는 손짓을 했다. 난 아무 말 없이 지나치려 했다. 골목길에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이.
내가 원룸에 들어서자 내 뒤에 발자국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수퍼 아저씨였다.
그는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 사진에는 남편의 뒷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떤 여자가 서 있었다. 둘은 원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머리칼이 솟구치는 거 같았다.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그의 행동들이 퍼즐을 맞추듯이. 왜 갑자기 내게 선물을 사오기 시작했는지. 집에 와서는 입맛이 없다는 이유로 밥을 먹지 않는지.
“이 여자는 남편 여동생이거든요? 그리고 남의 일에 신경 좀 끄시죠.”
난 집으로 올라왔다.
오늘 좀 일찍 올 수 있어?
이리 와.
난 소파 위에서 남편을 유혹했다.
내 안에다가 싸 줘.
절정에 이르러 난 외쳤다. 그는 흠칫 놀라는 것 같았다.
괜찮겠어? 자기 평생 아기 안 갖는다고 했잖아.
얼마 후에 난 임신을 했다. 그 후로 나는 우리수퍼에 다닌다. 아이의 이름은 우리, 라고 지었다.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아이는 손을 흔든다. 아저씨는 새삼스럽게 받아준다. 다행히 남편은 딸 바보이다. 누구나 우리를 보고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그래, 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