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미안해.


그때는 너에게 자주 화를 냈어. 사실은 내가 널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너에게 화가 나는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툭하면 약속을 어기는 것. 그리고 쉽게 버럭 하는 게 그렇게 거슬리는 건 내가 사실은 널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널 이용해 먹고 있다고 난 생각했어. 나는 네 집을, 네 돈을, 네 시간을, 네 마음을 마치 내 것인 것처럼 썼어.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어. 너는 내 남자친구니까.


나의 옆에 너는 사 년이나 있어주었어.


내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너는 평생 내 곁에 있어 주었을 거야. 나는 알고 있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더 이상 너와 나 둘 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는 널 사랑하지 않으면서 툭하면 의지하는 걸 고쳐야 하고,

너는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붙들려 있는 걸 고쳐야 하고.


번번이 실패했어.

소리치며 욕하며 헤어지자고 하고 나는 다시 너에게 돌아갔어.

사실은 두려웠어.

이 세상에서 너를 잃는 게.

내 편인 너를 잃는 게.

나를 사랑하는 너를 잃는 게.


그런데 나중에는 너에게 화내는 내가 더 싫어졌어.

화내는 것만 안 하면 살 수 있을 거 같았어.

화병에 죽을 거 같다고.

화를 안 내려면 너와 헤어져야 했지.

네가 내 화의 근원인 줄 알았어.


그런데, 원래 난 그런가 봐.

지금도 난 화를 잘 내. 그래서 내 곁의 그 사람이 힘들어 해.

할 수 없이 지난 주 월요일에 정신과를 갔더니, 내 문제라더라.

내 안에 불안 장애 때문에 너에게 걸핏하면 화를 냈었던 거더라고.


미안해. 네 탓인 줄 알았어. 미안해. 이제는 알 거 같아.


난 사실 널 사랑했어. 내가 가지지 않았던 걸 가졌던 널. 늘 혼자인 나와는 달리 자신만만하게 사람들 틈에 잘 뛰어드는 널 사랑했다는 걸 이제 알겠어.


잘 지내, 어디서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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