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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원 Jul 29. 2023

주인공 상: K

K는 전 직장동료이다.


K의 첫인상은 천재 개발자였다. 

맨 처음 회사에 갔을 때, 모든 게 낯설었는데, 한쪽 책상에서 우스꽝스러운 헤드셋을 끼고 (왜 그런 헤드셋 있지 않은가, 엄청 얇은 머리띠에 간신히 기능만 있는), 빅사이즈 후드 짚업을 입고 있었다. 파란색이었나?

그런 상태로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약간 그 괴짜 해커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살짝 긴장했다. 


"저런 친구와 경쟁을 해야 하다니!"


다행히, K는 개발자가 아니고 다른 업무를 하는 직원이었다. (휴~)


K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주인공이다. 외적으로도 그렇고 내적으로도 그렇고 사람이 엄청 선명하다.


K는 키도 큰데, 이목구비도 엄청 크다 (주인공이 될 상인가?). 

외모는 뭐 그런 관점에서 선명하다.

그리고 목소리랑 발음도 엄청 선명했던 것 같다.


K는 생각도 엄청 선명했는데, 이게 사람이 예측가능하다 뭐 속이 훤히 보인다 그런 게 아니라,

K의 마음이 너무 선명해서 밖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 선명하다는 표현이 나도 선명하다 외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구구 절절 설명하면, 뭔가 맑으면서도 힘이 넘치며 집중이 되어 있는 그런 느낌이다.



"융원 님은 이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나에게 질문을 하면 진지하게 나의 의견을 물어본다고 생각이 된다.

"좋은 주말 보내셨나요?"라는 간단한 인사도 정말 나의 주말이 궁금하다는 듯이 느껴진다.

"융원 님 우울해지니까 이제 그 얘기 말고 다른 이야기 하죠!"와 같은 말도 영화의 대사처럼 또박또박 이야기를 한다.


선명한 이유가 경험이 많고 지혜가 풍부해서 모든 걸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K와 보냈고 대화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나보다 한 5~6살 어렸던 것 같은데, 대화를 할 때면 누나와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교회 누나(?) 그런 느낌?

뭐 실제로 K는 교회를 다니기도 했다.


K는 테크 쪽 일을 하지는 않는데, 어느 정도 기술적인 지식이 필요했던 포지션에서 일했다. 그래서 관련된 지식이 필요하면 나한테 많이 물어봤던 것 같다. 그 당시 기억하기로는 내가 답변을 하고 있으면, 주변 몇몇 사람들이 끼어들어서 가르쳐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주인공의 이야기에 들어가야 하니까.


K를 주인공으로 표현했던 이유는,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녀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메인 줄거리가 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뭔가 이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면 중요한 이야기고, 이 사람이 힘들다고 하면 전체 스토리가 '위기' 단계에 있는 느낌을 들었다. 그러면 오히려 조연이 되는 내가 싫을 법도 한데, 그 스토리에 같이 묻어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되려 나도 메인 줄거리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K는 회사에 항상 일찍 출근했었는데, 집이 멀었던 내가 출근을 하면 항상 먼저 와서 공책 같은 것에 뭔가를 적고는 했었다. 일기장인가?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K가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드라마의 서브 스토리가 아닌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아! 보통 나는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데, K를 만나면 자동으로 관찰자의 시점이 되는 것 같았고 그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음, 이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는 K와는 두 번 정도 더 만났던 것 같은데, 한 번은 K가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했을 때 만났다.


이직을 했다는 소식을 먼저 카톡으로 받았었는데, 그 당시 내가 상황이 별로여서 하루하루 구질구질하게 지내고 있던 찰나에 K의 소식을 듣고 갑자기 내가 더 힘이 나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돼서 그런가?


그리고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내가 노르웨이로 떠나기 전에 한번 더 만났다. 강남 쪽에서 식사를 했었는데, 점심시간에 잠깐 봤다. 식사와 커피를 하고 이제 헤어지는데, 뭔가 아쉬워서 K의 어깨를 한번 토닥였다.


보통, 사람들이랑 작별인사를 할 때는 그 사람들이 떠나고 나의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는 느낌인데, K와의 작별인사 때는 내가 떠나고 그녀의 메인 스토리는 계속 진행될 것 만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하차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그녀는 주인공이다.




K를 생각해 보면, 사람이 뭔가 유별나거나 특출 나지 않아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 비결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는 나를 포함한 모두가 K와 같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인공일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커버사진: Photo by Esteban López on Unsplash

본문그림: Generated by 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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