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최초의 벗이 죽고 그의 시체 옆에서 깊이 생각에 잠긴다. 사람들에게 “초인”이라는 자신의 지혜를 나누어주고자 산에서 내려왔지만 그는 허탕만치고 있다. 결국 시체만을 얻게된 것이다.
그는 친구를 늑대들이 물어가지 않도록 안전한 곳에 묻어주기 위해 어두운 밤길을 나선다. 그런데 그 길은 찬바람이 스치는 쓸쓸한 길이다. 그는 그 한복판에서, 익살꾼과 무덤을 파는 자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견딘다.
그런데 그가 경멸받는 이유는 앞서 보았듯이 그의 가르침 때문이다. 그를 증오하는 자들은 선량하고 의로운 자들, 올바른 믿음을 가진 신자들이다. 우리는 차라투스트라가 그의 최초의 벗을 위로하는 장면에서 그가 시장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다르게 말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신의 죽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자들이 곧 독을 퍼뜨리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한 때는 그런 희망에 온 생애를 걸었던 한 사내를 구원하기까지 했다. 그들의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증오는 그가 단순히 안티크리스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자신들보다, 선량하고 의로우며 올바른 믿음을 가진 신자들이라 불리우는 자신들보다 더 삶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비록 신을 믿지 않으나 마치 저 옛날 그리스도라 불리는 한 예언자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마치 스스로가 또 한 명의 예언자인 것처럼 말한다. 그는 자신의 지혜를 나누어주고자 한다. 또한 그리스도가 그러했듯— 고통받는 이를 드높인다. 저 신자들이 바로 그러한 이유로 경멸받은 자라고 여기더라도 말이다.
이리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어두운 밤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그가 지금 걷는 그 길은 죽음의 길이다. 그는 무덤 파는 자들 곁을 지나간다. 그 가운데 그는 악마보다 더 악마같은 자로 비유된다. 여기서 우리는 차라투스트라가 그리스도처럼 행동했음에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경멸을 받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그가 예수와 닮았다는 것이다. 예수가 고향 나자렛에 돌아와 사람들을 꾸짖자 그들이 분노하며 그를 절벽에 밀어 떨어뜨려 죽이려 했던 것처럼 시장 속 군중들도 차라투스트라를 몰아 죽이려 한다. 예수가 고향 사람들을 꾸짖으며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의 시돈 땅의 과부와 또 한 명의 외지인 수리아 사람만이 구원받았음을 말했던 것처럼 차라투스트라도 시장 속 군중이 말종인간이라 비판하며 한 명의 광대를 구원한다. 예수와 차라투스트라. 이 예언자들을 본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들이 호인간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주었음에도 환영하지 않았고 불신했으며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차라투스트라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음의 길을 의연하게 지나쳐갈 때부터 한 노인을 만나고 난 후 평온한 영혼으로 잠을 청할 때까지의 장면으로부터 그가 얼마나 명랑한지 알 수 있다. 그의 몸은 비록 지쳐있었으나 별빛에 의탁하여 그 길을 걸어간다.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그는 잠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밤길을 걷는다. 그는 이제껏 마주해왔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차라투스트라를 멸시했고 죽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잠든 얼굴에서 오히려 그들의 어떤 참된 모습을 본다. 그들이 깨어있을 때와는 다르게 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여기서 하나의 진실을 상기한다. 인간이란 깨어있을 때 얼마나 많은 죄악을 범하고 있던가? 하지만 잠들어 있을 때면 어떻게 이리 순수할 수 있을까? 마치 태양이 자신의 빛을 무한하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것처럼,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지혜를 선물하는 것처럼, 이 사람들의 잠든 모습에서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의 순수함이란 빛을 선물받은 것이다. 그들이 깨어있을 때가 아니라 잠들어있을 때 오히려 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 모순. 차라투스트라는 이 때문에 길을 잃는다.
그는 죽은 자를 짊어지며 번뇌에 빠진다. 태양이 자신의 빛을 비추어 준다한 들 그것을 받아들일 존재가 없다면 태양의 행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차라투스트라 자신이 저의 지혜를 나누어준다한 들 그들 모두가 잠들어 있어야만 한다면, 도대체 차라투스트라의 행복은 무엇이란 말인가? 차라투스트라 제 자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바보와 시체의 중간에 있는 자라고도 불리우지 않던가.
하지만 그는 이렇게 번뇌하고 길을 잃었음에도 개의치 않는다. 번뇌와 길잃음. 그 늑대들이 굶주리며 배회하는 가운데, 그는 땅과 이끼위에 누워 평온하게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