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한복판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지혜를 나누어주고자 했으나 말종인간들의 시대에 그의 말은 허공으로 흩어질 뿐임을 깨닫고 실망한다. 그러던 중에 줄타기 공연이 시작되지만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한 사내가 줄에서 떨어져 죽고만 것이다. 이 비극적인 장면은 차라투스트라가 앞서 인간 존재를 밧줄에 비유한 것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그 사내는 줄타기 광대라 불리는 자다. 사람들 앞에서 오랫동안 광대짓을 해왔던 자다. 그런 그가 그만 발을 헛디디고만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벌써 오래전부터 악마가 내 발을 걸어 넘어지게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소”…
무엇이 그를 이토록 불안하게 했을까? 우리는 그 사내를 훌쩍 뛰어넘어버린 한 익살꾼을 기억해야한다. 익살꾼은 그 사내에게 마치 악마처럼 고함을 지른다.
“빨리 가! 이 절름발이야. 이 느림보, 밀매업자, 창백한 상판대기! 빨리 가지 않으면 내 발꿈치를 들어 간질일 테다! … 넌 너보다 나은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단 말이야!”
무엇이 그 줄타기 사내를 악마로부터 쫒기는 불안에 시달리게 했을지를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가 두려워한 악마는 자신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이었다. 인간 마저 교환 가능한 관계에 놓여 있는 듯한 시장 문화, 그런 시장 논리로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하고 탑에 갇히고 말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회초리질하고 보잘것없는 음식으로 달래며 길들였다.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그렇게 한 인간이 아니라 광대로 불리게 되었다. 또는 짐승으로 불리웠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구원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철저히 부정당하는 그 고통스러운 삶을 내세에 대한 희망으로 견뎌왔던 것이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벗이여, 내 명예를 걸고 말하거니와, 그대가 말하는 것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악마도 지옥도 말이다. 그대의 영혼은 그대의 몸보다도 빨리 죽을 것이니,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라!”
하지만 사내는 그의 말을 쉬이 믿지 못한다.
“그대의 말이 진실이라면, 내가 생명을 잃는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잃는 게 없다는 말이 되오. 그렇다면 나는 사람들이 회초리와 보잘것없는 음식으로 춤을 가르친 짐승이나 다를 바 없지 않소.”
그러나 그 사내는 차라투스트라에게는 짐승이 아니었다. 그는 차라투스트라가 보기에 자기 자신을 위해 줄타기라는 아슬아슬한 일을 천직으로 삼은 자다. 짐승과 초인 사이에서, 깊이 꺼진 심연 위에서 줄타기를 했던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가 비록 비참속에서 살다가 최후에 파멸을 맞이했을지라도, 그 광대는 차라투스트라로 하여금 벗이라 불리고 있다.
마침내 그는 참다운 구원을 받아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