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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Nov 11. 2019

중국, 5억 명 인구가 쇼핑하는 날

세계 최대의 쇼핑데이, 11월 11일 광군제, 쐉스이 双十一  

중국에 처음 유학갔을 때, 가장 놀라웠던 문화는 바로 11월 10일에 있는 전야제 행사였다. 머라이어 캐리,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유명한 가수들이 엄청난 규모의 콘서트 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은 함께 모여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고, 3,2,1! 카운트 다운을 세며 빠르게 올라가는 숫자를 함께 축하한다.


연말 행사라도 되는 줄 알았던 이 행사는 다름 아닌 "광군제 쇼핑 전야제". 중국의 가장 거대한 이커머스 기업 알리바바는 2009년, 아주 똑똑한 마케팅 전략을 내세웠다. 한해동안 수고한 자기 자신을 위해 스스로에게 선물하라는 것. 독신을 뜻하는 '1'이 무려 4번 들어간 11월 11일은, 솔로들을 타겟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다. 중국에서는 이날을 광군제(光棍節, Single Day)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빼빼로데이라는 마케팅이 휩쓸었지만, 롯데 불매운동으로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미국의 한 뉴스레터에서는, 이러한 광군제 행사에 대해 '중국의 이커머스 기업 알리바바는 싱글인 사람들이 그 어느 것보다 가장 열망하는 것 하나를 자본화한다'(Chinese e-commerce leader Alibaba will capitalize on the one thing single people crave more than anything: consumerism.)고 표현했다. 알리바바와 이커머스는 사람들의 욕구를 교묘하게 잘 깎고 다듬어, 소비로 분출시키는 데 특화돼있다. 


매년 11월 11일은 알리바바 쇼핑몰인 티몰을 비롯해 중국 2위 이커머스 기업 징동(JD.com),  동남아시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라자다가 합류하면서 동남아시아 구매자들의 참여 및 구매로 확대됐다. 거의 모든 온라인 쇼핑몰에서 기본 50%에서 최대 90%까지, 대대적인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며 소비자들을 사로잡는다. 싱글이든, 커플이든, 상관없이 전국민이 쇼핑과 소비에 열광한다. 올해로 11년째 진행되는 이 대박 세일 이벤트는 또 다시 신기록을 세웠다.



2019년 11월 11일, 100억 위안. 우리나라 돈으로 1조 6500억원을 사람들이 쓰는데 걸린 시간은 1분 36초였다. 11월 11일 0시가 땡 지나고 1분 36초만에 1조 6500억원을 소비한 것이다. 거래액 1000억 위안을 달성하는 데에도 1시간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매해 열리는 알리바바의 거래액 생중계와 카운트 다운 행사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다. 더 많이, 더 빨리, 돈을 쓰고 물건을 사기 위해 달리는 말들이 가득 한 경마장같다. 아니, 인간의 한계를 숨죽여 지켜보는 감동적인 마라톤 경기같기도 하다. 중국인으로서 중국이 가진 소비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중국인의 힘, 중국 경제 성장의 동력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으리라.


출처 https://www.cnbc.com/


Black Friday

미국에는 광군제보다 더 앞서 시작한 쇼핑데이가 있다. 매년 미국의 가장 큰 연중 행사인 추수감사절 다음날, 11월 넷째주 마지막 금요일은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다. 한해 처음으로 흑자(Black)를 기록하는 날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소매업자의 연 매출 70%가 이날 거래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기록적으로 많이 사고, 많이 팔리는 날이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본 사람이라면, 블랙프라이데이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가 자주 나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게 문이 열기도 전에 문 앞에 줄을 서서 전투 태세로 기다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성난 황소떼처럼 쇼핑 센터로 들어간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무서운 속도로 잡아채고, 몸싸움이 나는 건 시간 문제다. 이건 이미 미국인들의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어쩌면 이건 옛날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이커머스 공룡 기업 '아마존'이 등장하며 사람들의 몸싸움은 '광클' 전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많은 뉴스 기사들이 광클 전쟁에서 어떻게 힛 아이템을 가장 저렴하게 '겟'할지 앞다투어 소개하고 있다.


핫딜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매년 11월 넷째주 금요일은 전혀 다른 기념일이기도 하다. 바로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 1992년 9월, 캐나다의 한 예술가가 시작했다는 이 기념일은 소비주의에 저항하고, 보다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행동하는 날이다. 



Buy Nothing 

당장 필요한 것이 없는데도 핫딜, 타임딜 메뉴에 들어가서 물건을 보는 건 사실 우릴 너무 피곤하게 만든다. 곧 소멸 예정이라는 1만원, 5만원 신규 가입 쿠폰과 깜빡이는 [마감임박] 아이콘은 가끔 야속하기도 하다. 어쩌면 우린 책을 읽거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하다못해 창밖을 보며 멍-때리며 하루동안 지친 눈과 뇌를 쉬게 해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결국 그들이 만들어놓은 소비의 장에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은 "우리를 지하철에서 거북이처럼 고개를 내밀고 휴대폰 화면을 보며 최신 유행인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쿠폰을 적용해 싸게 구입하고, 몇 번 입다가 옷장 구석에 박아두는 것"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다. 유쾌하게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맞서 싸운다.


11월 마지막 넷째주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신용카드 자르기: 언제부터 돈이 내 통장을 스쳐지나가기만 했을까. 신용카드 잘라버리자!

 좀비 코스프레: 좀비가 된 참가자들이 멍한 눈빛으로 쇼핑몰 주변이나 다른 소비자 안전구역들을 배회한다. 아울렛 할인코너를 지나갈 때 굳이 코스프레를 하지 않아도 피곤한 몸을 이끌며 굳이굳이 세일 코너를 뒤지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대형 마트를 빙빙 돌기: 참가자들은 조용히 카트에 아무것도 넣지 않거나 실제로 아무 상품도 사지 않은 채로 길고 이해할 수 없는 콩가 라인을 형성하며 쇼핑몰이나 가게 주변에서 그들의 쇼핑 카트를 운전한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하이킹: 대형 마트보단 산과 들, 바다로 떠나는 게 좋지 않을까.

겨울 옷 교환하기: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에서 시작되었고 지금은 캔터키, 유타 그리고 오레곤에서 진행되는데 겨울 옷 기부하기를 원하는 어떤 이들이 코트를 모으고 필요한 이들이 가져간다.

       (자료출처)





넷플렉스 오리지널 콘텐츠 중에,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방송이 있다. 넘쳐나는 물건에 소소한 삶의 행복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정리정돈 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버리는 법'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옷장에 가득 쌓인 옷들을 하나씩 꺼내며,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과 함께 옷을 버리거나 정리한다. 그리고 곤도 마리에에게 행복을 찾아주어서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마리에는 그저 잘 버리라고 말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해방감을 느낀다. 


어쩌면 시작은 애초에 집에 많은 물건을 들이지 않는 것에 있다. 내 삶의 소소한 행복, 내가 중요시 하는 가치,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압도할 만한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을 들이지 않는 것. '소비주의', '미니멀리즘', '환경보호'와 같은 거창한 말을 잠시 재쳐두자. 그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올해만큼은 '핫딜'과 '대박 세일'의 늪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사지 않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조용한 삶의 가치를 마음껏 즐기기 바란다.


당신은 당신 자체로도 이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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