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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Oct 03. 2022

아이폰 14 에어팟 맥스,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다이슨 에어랩, 식기세척기, 건조기, 제습기는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할까?

세상에 너무 많은 필수템이 일렁거린다. 연말이면 '올해의 가장 잘한 소비' 등이 블로그며 유튜브며 한 가득이다. 인생템은 많아도 너무 많다. 사람들은 서로 '이거 외않사요...?'를 외친다. 말 그대로, 이렇게 좋은데 도대체 왜! 안 사냐!는 답답한 마음을 토해놓는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도 '이거 진짜 좋더라'라며 입소문으로 전해지는 '진짜 인생템'을 종종 듣는다. 특히 해당 직군이나 회사에서 직접 일하며 경험을 토대로 제품의 효용성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구매 직전까지 다다르는 경우도 있다. 



이거 진짜 꼭 사. 이거 사고 삶의 질이 달라졌다니까?


다이슨 드라이기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50만 원짜리 드라이기가 어딨냐며 콧웃음을 쳤다. 에어팟이 처음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콩나물 대가리라며 비웃었을 뿐 아니라 20만 원이나 하는 이어폰에 기함했다. 


지금은 여행을 가더라도 다이슨 에어랩 풀 패키지를 들고 다니는 친구가 주변에 둘이나 있고, 에어팟은 멀쩡한 데도 새로운 세대가 나올 때마다 새로 구매하는 친구가 셀 수 없이 많으며, 그 사이 에어랩도 에어팟도 여러 영어 이름을 달고 컴플릿, 프로, 맥스 등으로 진화하며 가격과 위상을 불려 가고 있다. 


한번은 식기세척기를 두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나는 식기세척기를 없어도 되는 것으로 꼽았지만, 친구는 안 써봐서 모르는 것이라며, 만약 공짜로 줘도 안 쓸 것이냐고 물었다. 공짜로 주면... 공짜로 주면 식기세척기를 쓰려나? 곰곰이 고민했다.


미국에 살면서 반년 정도, 식기세척기가 구비된 아파트에 산 적 있다. 세척기를 돌릴 만큼 한 번에 많은 양의 설거지 거리가 나올 때는 그 값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반년에 1, 2번 정도...?) 하지만 보통은 사용하지 않았다. 아침에 프랜치토스트를 해 먹을 때 사용한 보울은 손으로 대강 대강 씻어냈다. 식기세척기에 넣어뒀다가는 저녁에 괜히 말라 붙은 보울을 더 힘들게 씻겨내야 하는 고충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몇 개 안 찬 그릇들을 식기세척기를 돌릴 만큼 자본주의를 마음껏 누리는 성향은 못 되는 탓이다. 한번은 드래곤볼 구슬 모으듯 설거지 거리를 다 모아 큰맘 먹고 식기세척기를 돌리려고 한 적이 있는데, 세척기용 설거지 세제가 다 떨어져서 한밤중에 코스트코에 갔다 이것저것 괜히 더 많은 것까지 사 오게 된 경우도 있었다.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문을 열면 따뜻한 김이 가마솥 열기처럼 뿜어져 나오는데, 어딘가 그 찝찝한 수증기를 보고 있노라면 환경오염에 더욱 기여한 게 아닌가 싶은 찝찝함과 죄책감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결론을 내자면 공짜로 받은 식기세척기라도 나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내 지갑의 돈만 털어가지 않았을 뿐, 사회적으로 많은 비용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위험성은 그 심각성에 비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일본, 우리나라 등 오염과 피해 사례가 실로 너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리 1등급 전기효율을 단 세척기일지라도, 대야에 물을 받아두고 손으로 설거지해 씻어내는 방식보다 전기 낭비가 큰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다이슨 에어랩도 마찬가지다. 미용실 가격이 워낙 비싸니, '파마를 30만 원 주고 6개월 지속하느니, 에어랩을 60만 원 주고 평생 사는 게 낫다'는 트위터 현자의 한 마디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다가도, 생필품과 사치품으로 나눠 생각해보자면 사치품 쪽에 가깝다. 빠른 건조로 드라이 시간을 줄여준다는 광고도, 아침마다 에어랩 배럴을 갈아 끼우다 보면 평소보다 훨씬 오랜 시간 거울 앞에 있게 되는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 말리는 시간을 줄여준다'는 것이 결코 '나를 위한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는 '더러운 때를 한 번에! 운동화 세탁기', '화장품 브러쉬 전용! 미니 세탁기', '집에서 물미역 머리카락 만들기, 안 씻어내는 트리트먼트' 등의 이름으로 실제 사용 후기(의 모습을 한) 광고 영상이 셀 수 없이 많이 떠돌아다닌다. 생전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물건도 홀리듯 '사이트 바로가기'를 눌러 후기를 구경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물건쯤이야 소확행이지', 혹은 '이 맛에 돈 버는 거지' 등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물건이 만들어지고, 택배 박스와 박스테이프로 꽁꽁 싸여, 흐물거리는 회색 비닐봉지에 담겨 집 앞으로 배달되는 과정, 또 몇 번 사용되지도 않고 처박혀 있다가 쉽게 버려지는 여정을 생각해보면, 이런 '소확행'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더 많은 자본의 축적과, 그로 인해 가능해지는 고도화된 기술의 혜택은 과연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었을까? 식기세척기로 설거지하는 시간을 줄인 우리는, 유튜브 프리미엄 가입으로 광고 보는 시간을 줄인 우리는, 우리 삶을 얼마나 더 풍부하게 만들고 있을까. 


사실 나도 꼽으라면 꼽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정수기, 로봇청소기, 스팀다리미... 페트병 쓰레기 없이 물을 마실 수 있게 됐고, 로봇청소기에 청소를 시켜 두고 외출 준비를 할 수 있으며, 꾸깃꾸깃 처박혀 있던 옷을 외출 직전에 구김 없이 감쪽같이 펴낼 수 있게 됐다. 아무것도 없이 사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갖출 걸 갖추며 살아가는 것이 더 '편리'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해야 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물건을 위한 곳으로 변질되어간다면, 방 안에서 발에 치이고 걸리는 것들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내가 돈을 지불하고 기꺼이 집으로 데려온 물건들이 어떤 물건들인지 마주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비의 주체가 바깥이 아닌 나 자신이 되도록 하는 습관은 분명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헨리 소로우


아이폰 14가 나왔을 때, 에어팟 새 버전이 나왔을 때, 어떠한 고민 없이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꼭 주의하기를! 그 소비로 인해 나의 삶이 어떻게 풍부해지는지 생각하고, 이미 가지고 있던 것과 어떤 부분이 어떻게 다른지 충분히 잘 인식하고 있으며, 같은 값의 돈을 충분히 유의미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 공짜로 얻은 식기세척기보다, 신제품인 아이폰14 스펙 비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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