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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Dec 16. 2019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모피를 벗다

천연 모피보다 인조 모피로 Flex하는 시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을 생각하면, 새하얀 고급스러운 퍼(Fur)를 두르고, 보석이 촘촘히 박힌 왕관을 머리에 올린 채 우아하게 걷는 자태가 떠오른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 군주제를 고수하고 있는 영국에서 올해로 67년째 재위 중인 여왕. 그녀는 영국 왕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로 꼽힌다.




그런 그녀도 간혹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가 있는데, 바로 동물의 가죽이나 털로 만든 옷을 입고 공식 석상에 나올 때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코트뿐만 아니라 장갑, 모자까지도 모두 모피 제품을 즐겨 착용했다. 오래도록 동물 보호 단체의 항의와 시위가 있었지만, 영국 왕실은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어쩌면 모피 제품은 왕실의 존엄성과 위엄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51019064200009

여왕의 옷이나 악세사리뿐만 아니라, 영국 왕실 근위병들의 모자 또한 실제 곰털을 이용해서 만든다. 역사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영국 왕실이 특별히 허가해 영국의 상징이 되기도 한 근위병 모자. 높이 45cm에 무게가 무려 9.5kg이 나가는 근위병의 모자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흑곰 한 마리가 희생된다. 영국 정부는 개체조절을 하기 위해 희생되는 곰의 털만 사용할 뿐이고, 인조 털모자로는 순모피에 필적하는 대체품을 찾지 못했다고 주장하곤 했다.


하지만 2019년 11월, 영국 신문사 텔레그래프 등 외신들은 버킹엄 궁전 대변인의 발언을 인용해 "앞으로 여왕의 의복에 사용되는 모든 모피는 인조 모피를 사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만들고 착용해온 옷은 그대로 입겠지만, 추가적으로 제작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25년간 영국 왕실의 의복 제작을 담당했던 앤젤라 켈리 디자이너도 자신의 저서 <동전의 뒷면: 여왕, 디자이너, 옷장> 를 통해 "2019년부터는 인조 모피가 여왕 폐하를 추위로부터 감싸줄 것"이라고 밝혔다. 


부유함의 상징에서 감수성 부재(不在)의 상징으로


그동안 모피는 '부유한 중년여성'의 상징이라는 여겨지기도 했다. 돈 좀 있는 집안의 여성이라면 어깨에 여우 머리까지 붙어 있는 모피 목도리를 두르거나 악어 가죽 클러치를 들었고, 명예 좀 있는 집안의 남성이라면 곰이나 호랑이, 사슴의 얼굴을 박재해 두고 호랑이 가죽 카페트를 뽐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실제 살아있던 동물의 가죽이나 털은 '멋'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거나,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지기 쉽다. 예전에는 '유난 떠는' 동물 보호 협회의 주장이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멋'의 기준이 된 것이다.


최근 영국 왕실은 소셜 미디어 SNS 관리자를 공개 고용하는 등, 전 세계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며 그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하고 있다. 모피를 꾸준히 입고 소비하던 그동안의 왕실의 태도가 바뀐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모피'를 가치있게 보거나 우러러보지 않는다. 오히려 속을 메스꺼워해 한다. 이름마저 '가짜 모피'가 아니라 '페이크 퍼'로 불리우며 하나의 패션 아이콘이 됐다. 


대중에게 더 많이 노출되는 사람일수록, 대중이 더 우러러보는 사람일수록, 그의 행보는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여왕의 결심은 큰 의미를 지닌다.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모피 퇴출 움직임에 영국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여왕이 발을 맞춘 것이다.


사진 출처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513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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