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이 깃든 빈티지샵은 지속가능할까
3, 4년 전쯤부터 엉성하게나마 새 옷을 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길을 걷다가 유행하는 색감에, 좋아하는 패턴에, 단추 디테일까지 곁들인 티셔츠가 '고작' 1만 원대인 걸 보면 눈이 슬금슬금 돌아가고, 또 매장에 들어가서 소매 끄트머리라도 괜히 만져보다 나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안 돼!' 하고 나 자신을 다그치며 돌아오곤 한다.
이런 내가 참새가 방앗간 가듯 들르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빈티지샵이다. 누군가 입고 버리려고 한 옷이 다시 살아났다는 안도감, 버릴 뻔한 옷을 입는 것이니 환경에 나쁜 영향을 '덜' 미칠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을 가지고 간다. 하지만 쓰레기산과 비슷한 모습으로 섬유 쓰레기에서 옷을 세탁하고 골라 창고형 '빈티지샵'을 운영 중인 곳을 보면, 좀 씁쓸해진다. 유튜브에 '제로웨이스트'라는 해시태그를 걸고 중고옷 쇼핑이나 하울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무척 반갑다고 생각했지만 요새는 그렇지 않다. 인스타그램 광고를 통해 '매일 새 옷이 업데이트돼요!'라고 홍보하는 모습도 그다지 달갑지 않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아이템이, 어떻게 '빈티지'인가 싶기도 하다.
‘빈티지(vintage)’란 원래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든 해’를 의미한다. 해마다 일조 시간과 강수량 등 포도 농사의 기후 조건이 달라지므로, 어떤 해에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느냐에 따라 그 맛과 가격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빈티지는 와인의 품질을 예측하고 마시기 적절한 시기 등을 판단하는 데 참고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빈티지’란 용어는 현재 일상생활에서는 '잘 숙성된 포도주처럼 오래되어 좋은 제품'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복고풍 디자인의 골동품 소품 의류 등을 말할 때 통칭하여 '빈티지'라고 부른다. ‘오래되어도 가치가 있는 것(oldies-but-goodies)’, 혹은 ‘오래되어도 새로운 것(new-old-fashioned)’을 의미한다.
그래서 빈티지샵에서 마치 지난달 자라 신상품 코너에서 본 빨간색 원피스가 보인다면, '건졌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패스트패션을 소비하던 지난날의 내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패스트패션으로 울컥울컥 넘치는 섬유 쓰레기 생애주기의 끝단을 '조금' 늘리는 게 빈티지샵의 비결이라면, 나는 더 이상 빈티지샵이라면 반갑지가 않다. 그만큼 매일 같이 옷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각 패션 회사에서 자신이 만든 옷, 그러니까 자신이 만든 쓰레기를 수거해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로 제작하지 않은 한, 패스트패션에서 빈티지샵으로의 이전은 사실상 유통하는 회사만 달라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패스트패션 회사는 페트병으로 티셔츠를 만들었다고 자랑할 때가 아니다. 제작한 옷을 직접 수거해 옷의 순환고리를 내부적으로 돌릴 때, 비로소 문제 해결에 (조금) 가까워질 수 있다.
빈티지를 소비하는 것이 옷의 수명을 아주 조금만 연장시킬 뿐, 옷이 만들어지고 버려지고 유통되는 과정 자체에 나는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으로도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은 퍽 절망스럽다. 새 옷을 사지 않고 빈티지샵으로 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니. 자본주의가 더욱 교묘하게 우리 삶에 스며드는 만큼, 기후위기에 가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은 돌다리도 10번, 100번은 두들기지 않으면 그린워싱에 퐁당 빠지기 십상이다. 으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