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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Sep 26. 2019

미국은 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까?

친환경 도시 디자인과 넛지효과

Washignton DC의 근교 Virgina, 퇴근 후면 친구들과 파티를 벌였다. 비어퐁을 하자는 외침에 거실에 있던 친구들은 손에 들고 있던 걸 쓰레기통이 던지고는 밖으로 달려갔다. 걸음이 느린 나는, 쓰레기통에 처박힌 물건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먹다 만 피자, 일회용 컵, 그리고 그 안에 찰랑이는 남은 맥주.


미국에 도착한 날 가장 충격을 받은 건 세금과 팁으로 껑충 뛰는 식당 영수증도, 나를 집요하게 따라오며 '웨어 아 유 프롬'을 묻는 남성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워싱턴 Monument와 Congress도 아닌, 내 몸뚱이도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아 무서울 정도로 큰 쓰레기통이었다.




Washington DC, National Mall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는 왜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지 않고 버릴까?


 나는 분리수거를 잘하지 않는 원인을 '쓰레기통 디자인'에서 찾았다. 워싱턴 DC의 쓰레기통은 내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크기였고, 일반 쓰레기통과 분리수거 쓰레기통이 한눈에 구분되지 않았다. 입구는 넓은 동그란 원형이었다. 이런 쓰레기통에 사람들은 훨씬 쉽게, 함부로 쓰레기를 버릴 수 있었다.


 한국은 이와 많이 다르다. 우리는 손에 쓰레기를 들고, 두 개 혹은 네 개의 쓰레기통 앞에 서서 '잠시 주춤했다가 생각하고 버리는 행위'로 반응한 후 쓰레기를 버린다. 투박하고 불투명한 워싱턴 DC의 쓰레기통은 이러한 행위를 유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호기심이 일었다. 쓰레기통 디자인은 분리수거 행위를 유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는 높은 재활용률로 이어질까? 나는 인턴십 기간에 워싱턴 DC 외 여행하며 방문한 6개 주(州)의 주별 쓰레기통 사진을 찍고 각 재활용률 현황을 조사하는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았다.



 미대륙을 여행하며


흥미로운 과정이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각 도시별 쓰레기통 디자인을 보고 찍고 쓰레기통 내부를 들여다봤다. 잘 버려져 있는지, 센스 있는 쓰레기통 디자인을 보고 있으면 도시가 조금 더 깨끗해 보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필라델피아주에서는 한국보다 더 직관적인 모습을 한 쓰레기통도 볼 수 있었다.


  

   분리수거와 재활용률은 상관이 없다? 


 4개월간의 프로젝트 과정을 통해 나는 내 가설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쓰레기통 디자인은 재활용률과 크게 상관이 없었다. 펜실베니아 주는 병 쓰레기통을 좁은 원형 입구로, 종이 쓰레기통을 신문 크기의 직사각형 입구로 차별화해 디자인했지만, 재활용률은 가장 낮았다. 반면 사람 덩치보다 큰 불투명한 쓰레기통이 있는 워싱턴 DC는 재활용률이 가장 높았다. 폐기물 처리 회사와 의원실을 통해 이유를 찾아보니, 재활용률은 쓰레기통 디자인보다 쓰레기 분리 작업에 투자한 자본과 노동량에 비례했다. 쉽게 말해, 워싱턴 DC는 쓰레기 수거 후 분리수거 업체에 보내기까지 분리 작업에 많은 돈을 썼기 때문에 높은 재활용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펜실베니아 주 : 분리배출 유도형 쓰레기통, 재활용률은 가장 낮았다


뉴욕 주 : 5개로 분리된 쓰레기통, 재활용률은 높은 편이었다
워싱턴 DC : 원형 쓰레기통, 재활용률은 가장 높았다


그렇다면, 시민이 분리수거를 잘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결국 쓰레기를 정부와 기업이 자본과 노동력을 투자하면 폐기물 문제를 비롯한 환경 문제는 해결되는 일일까? 그럼, 난 왜, 그리고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왜 매주 목요일 저녁 쓰레기들을 가지고 나와 그렇게 열심히 분리수거를 했던 거지?


  쓰레기통 디자인은 정말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까? : 평균의 함정


 나는 쓰레기통 디자인이 분리수거의 효율성을 도울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목표 분석 지표를 '재활용률'로 지정하는 실수를 했다. 재활용률 측정은 이를 측정한 연구 기관에 따라 다른 정의로 내리고 있고,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재활용률'은 폐기물이 재활용 처리 업체로 들어가기 까지만 추적하여 측정하기 때문에 실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엉망으로 섞여 있는 DC의 폐기물을 재활용 처리업체에 잘 갖다 주기만 하면 재활용률 100%로 보고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재활용률이 간혹 100%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는데, '재활용률'에 대한 정의가 바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워싱턴 DC는 수거한 폐기물을 직접 분리해내는 작업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물과 종이가 섞여 버려진 상태에서, 종이가 제대로 재활용될지는 의심스럽다.


     일상 속 작은 실험


 나는 다른 실험을 하나 해 봤다. 당시 일하고 있던 워싱턴 싱크탱크  Hudson Institute 연구소 내 배치된 검은색 일반 쓰레기통 옆에, 투명한 플라스틱 통과 갈색 종이 상자를 뒀다. 각각 플라스틱 컵과 이면지가 잘 보이게 버려뒀다. 이후 약 한 달간 매주 관찰한 결과, 분리수거는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함께 일하던 동료 인턴들에게 인터뷰해본 결과, 어떻게 버릴지 한눈에 보여 편했고, 버려진 쓰레기가 잘 보여 의무감이 들어서 분리수거했다는 답변이 많았다.


      팔꿈치로 찌르는 넛지효과, 변화를 유도하다


 간단한 실험을 통해 배울 수 있던 것은, 쓰레기통 디자인과 같은 도시 디자인이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친환경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폐기물 처리에 드는 자본과 노동력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팔꿈치를 찌르는' 넛지 효과는 모두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환경 분야에 특히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India Water Portal, 분리수거되지 않고 버려지는 폐기물 모습


     당신의 환경은 평등합니까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는 쓰레기통 디자인과 같은 친환경 공공 디자인을 통한 시민 행동 변화보다, 자본과 노동을 투자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분리수거되지 않은 쓰레기통을 분리하는 작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옳지 않다.


 첫째,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유발한다. 환경 문제가 소수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다. 따라서 시민은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으며 이 사실을 시민들은 알고 있어야 한다. 이때 해야 할 일은 대단한 게 아니라, 쓰레기통 앞에서 1,2초 정도 고민하다 분리수거하여 버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쓰레기 사후 분리 작업에 드는 불필요한 인적, 물적 자본을 절약할 수 있다.


 둘째, 효율적이지 않다. 위 사진과 같이, 함께 버려진 쓰레기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특히 폐지와 같은 재활용품의 경우, 액체류와 함께 버려지면 그 가치가 떨어져 결국 재활용할 수 없게 된다. 잘 버리면 자원이 될 수 있었는데, 잘 못 버려 쓰레기가 돼버리는 것이다.


 셋째, 평등하지 않다. 사회적 약자에게 환경오염과 피해를 전가한다. 남이 한 번에 버린 피자 조각, 맥주, 영수증 쪼가리가 섞인 쓰레기는 누가 분류하는가? 더럽고 비위생적인 것을 넘어, 생명에 위협을 주는 악취와 오염이 작업 환경인 직업은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된다. 찜통더위 속에서 선풍기 하나 틀어두는 열악한 작업 환경도 허다하다. 이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이어진다. 경제 강대국은 쓰레기를 개발도상국에 넘긴다. 개발도상국은 폐기물 처리 시스템이 정비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쓰레기를 몽땅 수입하고, 오염은 쓰레기를 떠맡은 지역의 시민들의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 환경오염이 돈 있는 사람에서 없는 사람에게, 강대국에서 개발도상국에게 전가되고 있다. 필리핀으로 쓰레기를 불법 수출한 적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어쩌면 돈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아니 환경오염을 전가하는 쪽에 서 있는 셈이다.

 



 쓰레기 분리수거의 허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자도 많다. 분리수거를 함으로써 사람들은 쓰레기 배출에 대한 죄책감은 덜지만, 실질적으로 재활용률은 아주 적다는 것이다. 종이컵 100개 중 단 1개만 재활용된다는 결과도 있다. 따라서 쓰레기통 디자인으로 분리배출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어쩌면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환경 문제는 나 혼자 바뀐다고 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바뀌어야만 해결되는 문제이니만큼 충분히 유의미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한국 환경부가 카페에 일회용품 컵 사용을 규제하고, 대형마트에서 박스 재활용을 금지하는 등 강경한 규제 정책을 펼치는 것은 때론 유효하나 때론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친환경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도시 디자인은, 넛지 효과를 통해 자연스러운 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다.


WWF의 핸드 티슈 케이스

유명한 친환경 제품 디자인 WWF의 핸드 타월 케이스도 좋은 예다. 시각적인 효과를 가져와 시민들이 손을 씻은 후 핸드 타월을 적게 이용하게끔 유도하는 센스 있는 제품 디자인이다.


 '환경'은 우리 모두의 이해관계와 얽혀 있다. 숨을 쉬고, 물을 마시고, 삶을 영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쓰레기통 디자인 또한 한 예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거부감을 주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친환경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유난히 하늘이 파랗고, 노을이 예쁘고, 강아지와 고양이, 다람쥐가 귀여운 미국. 모든 분야에서 세계 1위를 꿈꾸고 있는 미국이, 환경 분야에서도 1등을 욕심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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