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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28. 2024

푸른 하늘 보라매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했다. F-4E는 관람객들 머리 위로 낮게 저공비행을 하며 그 위용을 뽐냈다. 이제 퇴역이 한 달 남아 마지막 비행으로 인사를 남긴다는 전투기는 끝까지 당당하고 멋있었다.      


공군 창설 75주년 행사의 하나로 수원 제10전투비행단에서 에어쇼가 열린다는 것은 며칠 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알았다. 수원에 살고, 비행단이 멀지는 않지만, 전투기의 항로가 아닌지라 막상 비행 소음은 거의 들을 일이 없는데 며칠간 유독 소음이 심했다. 유난스러운 비행기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니 뭔가 달랐다. 브이 자를 선명하게 그리면서 여덟 대가 편대비행을 하고 있었다.      


‘전투 훈련이 아니로구나.’     


이렇게 짐작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내게 전투기가 낯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다가 전역한 아빠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빨간 마후라’의 자부심을 잊지 않았던 전투기 조종사였다. 그러니 우리도 전투훈련과 에어쇼 연습의 편대비행 모습이 다른 것쯤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에어쇼 연습이라는걸 짐작하고 나서 검색하니 아니나 다를까 공군 수원 기지에서 에어쇼가 있었다. 마침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번에는 블랙이글스 팀의 에어쇼뿐 아니라 F-4E의 퇴역 비행을 겸한다고 했다. 그저 에어쇼뿐이었다면 한 번쯤 망설였을지도 모르나 퇴역 비행을 한다는 그 전투기 F-4E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그 기지 안에 들어가 보고 싶기도 했다.      


아침 일찍부터 에어쇼를 보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비행단 안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어 갔다. 내 어린 시절엔 매주 일요일이면 부대 안의 성당에 갔고, 아빠를 따라 군용지프를 타고 자주 드나들었던 곳이다. 비행이 없는 휴일엔 활주로 옆 잔디밭에서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다녔던 기억도 있다. 공군부대이면서 아빠의 일터였고, 가끔은 내 놀이터이기도 했던 곳을 이제 수많은 방문객 사이에 섞여서 들어가는 기분은 어쩐지 이상했다. 익숙함과 낯섦, 그리고 긴장과 흥분이 혼재된 묘한 느낌이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F-4E의 퇴역 비행을 기다렸다. 오랜 기간 우리 공군의 주력기였지만, 이제 더 빠르고 발전된 기종에 자리를 내어준 지 오래인 이 전투기는 다음 달이면 모든 훈련을 종료하고 퇴역한다고 했다. 

F-4E 네 대가 편대비행을 했다. 굉음을 날리며 멋진 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엔 관람객들 머리 위로 저공비행을 하며 기체를 비틀어 인사하고 지나갔다. 이제 길고 긴 임무를 마치고 퇴역하는 전투기의 당당한 마지막 비행을 보는 내내 나는 어쩐지 울컥한 마음이었다.     


아빠가 전투기 조종간을 놓고 퇴역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 아빠는 공군정복을 갖춰 입고, 우리 다섯 식구가 모두 모여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F-4E를 보며 왜 갑자기 그 가족사진이 떠올랐을까. 

가족사진 속의 아빠도, 엄마도, 동생도 이제 떠나고 없다. 나는 F-4E의 비행 동영상과 비행장 사진을 멀리 미국에 살고 있는 언니에게 보냈다. 나처럼 이곳과 이곳의 추억을 간직한 유일한 가족이니 여러 말을 보태지 않아도 비슷한 기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F-4E 네 대는 일사불란하게 하늘을 누볐다. 꼬리에 붉은 연막을 뿌리며 하늘로 솟구치기도 했고, 다양한 대열을 이루면서 멋진 퇴역 비행을 마쳤다. 한 대씩 인사하듯 시야에서 사라지는 전투기들을 오래 바라봤다. 

한때 나의 아빠도 탔을 F-4E라고 생각해서 더 애틋했을까. 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을 아빠를 생각했다. 젊고, 건강하게 인생의 빛나던 한 시절을 통과하고 있었을 나의 아빠. 환호하고 손뼉 치는 인파 속에서 조용히 혼잣말처럼 인사를 건넸다. 

   아빠, 저 전투기는 이제 퇴역이래요. 보고 계시나요.     


저 비행기들은 이제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대전 현충원에도 오래되어 퇴역한 비행기들이 몇 대 전시되어 있다. 오늘 퇴역 비행을 마친 F-4E도 그렇게 어딘가에서 전시되거나, 교육자료가 되어 남은 쓸모를 다하며 생을 살게 될까. 

날지 못한다고 해서 비행기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어느 공원, 어느 기념관 한 귀퉁이에서 한때의 영광을 간직한 채 붙박이로 존재하게 되더라도 그 비행기를 추억으로 간직한 사람들이 있는 한 퇴역했어도 여전히 하늘을 나는 보라매이며, 변치 않는 전투기 F-4E다. 

내 유년의 추억 한때가 남아있는 공군 수원 기지를 천천히 걸어 나오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리운 사람들이 다들 떠났지만, 기억하는 내가 있다. 그러니 떠난 사람들은 아직 떠난 것이 아니다.         

      




            *보라매 ; 태어난 지 1년이 되지 않은 매나 참매의 새끼가 사냥용으로 길들여졌을 때 부르는 말로, 1952년부터 사용된 대한민국 공군의 상징이자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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