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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y 15. 2024

나의 에너지가 오는 곳

                          

도서관의 글쓰기 수업에 모인 이들은 연령대가 다양하다. 나는 ‘에세이쓰는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하는데, 같은 수업이지만 장소에 따라 수강생들의 연령대가 달라진다. 독립서점에서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을 만난다. 20, 30대의 미혼남녀들인 경우가 많다. 반면 도서관에서의 수업은 50, 60대가 대부분이며 그들 사이에서 40대만 되어도 ‘젊은 분’이라는 수식어를 나도 모르게 붙이게 되니 재미있는 일이다. 하긴 꼭 수업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부터 마흔 언저리의 사람들에게 ‘젊은 분’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니 이제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싶다. 깨닫는 순간, ‘이런 나이 든 사람 특유의 화법은 고쳐야지’ 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게 뭐 어때서, 자연스럽게 하자’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건 외모뿐 아니라 하는 말에서도 감출 수 없는 법이지.     


독립서점이냐 도서관이냐 수업의 장소가 바뀜에 따라 다른 건 사실 수강생의 연령뿐 아니다. 그들의 글이 다르고, 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니 수업 전체의 분위기 역시 같을 수가 없다. 도서관에서 처음 강좌를 개설하면서 수강인원을 6명으로 작게 설정했다. 소규모의 개인적인 수업을 원했는데 유명 강사도 아니고, 유명 작가도 아닌 내 수업에 뭐 그리 사람들이 많이 신청하겠나 싶은 맘도 한구석에 있었으니 사실 기대도 적었다.     


수강 신청이 열리는 날, 나는 강원도에서 새벽부터 낚시하고 있었다. 이른 봄, 청명한 햇살과 바람 속에서 문득 오전 9시부터 수강 신청이 열렸겠다고 하는 생각을 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열한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궁금한 맘에 도서관 앱을 켜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여섯 명의 작은 강의이긴 하지만 이미 수강 신청이 마감되어 버렸다. 오, 놀라운데? 속으로 신기했다.

첫 수업에서 인사를 나누는데 다들 미리 오전 아홉 시를 기다리고 신청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에 웃었다. 주위에 자기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있다는 것은 뭔가 그 일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는 생각에 괜스레 힘이 나고 뿌듯해지는 일이다.      


도서관의 에세이쓰기 수업에 모인 여섯 명의 수강생들은 다양했다. 다른 글쓰기 수업도 받는 열정적인 분도 있고, 퇴직 이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는 분도 있었다. 또한 전업주부로 존재감 없는 자신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업에 나온 이유는 다양했으나 결국 비슷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들, 무언가 하고 싶은 사람들. 나는 이처럼 늘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도서관에 모인 하나하나가 모두 내겐 멋진 사람들이었다.     

4회차 수업의 마지막 시간. 한 번에 두 시간씩, 그렇게 네 번을 보낸 인연도 쉬이 볼 일이 아니다. 그 많은 사람과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잠시 머물러 함께 서로의 글을 나누었다는 것은 엄청난 인연이다. 수줍게 초콜릿을 내미는 소녀 같은 분도 계시고, 마지막 과제를 보내는 이메일에 아쉬움을 담뿍 담아주신 분도 계셨다. 그리고 어떤 분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멋쩍게 웃으시며 그림책을 한 권 내게 주셨다. 알고 보니 그 수강생은 직접 그림을 그려 멋진 한 권의 그림책을 내신 그림책 작가님이셨다.      


집에 돌아와 그분이 주신 ‘탄생’이라는 그림책을 펼쳤다. 문인화 수업도 받으시고, 열정적인 등산가이기도 한 그분이 곧 태어날 손주를 생각하며 손수 펴내셨다는 그 책엔 새로 태어날 손주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가득 묻어났다. 선명한 색감의 그림체도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엔 대단하신 분들이 참 많다는 걸 또 한 번 느낀다.

마지막 수업에서 말씀하시길 다음 날 아이가 태어날 거라 했다. 아마 이제 그 아기는 지금쯤 세상에 태어나 힘찬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이제 이름을 갖고, 가족과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인생을 살아갈 그 아기를 생각했다.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만남을 기다리며 그림책을 펴내는 할머니가 있다니. 그 손주는 참 좋겠다.    

 

도서관에서 네 번의 수업은 끝났지만, 어딘가에서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서지만, 어쩌면 끊임없이 배우고 있는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쓰고 싶어 하는 그들의 희망이 내게로도 전해진다. 언제나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그들의 열정이 내게도 스며든다. 그러니 그들 덕에 나 역시 끊임없이 쓰는 사람으로 살 에너지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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