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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n 17. 2024

수인선 협궤열차

                                     

“한 시대가 사라지는 것 같은 마음이지요”

1995년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뉴스로 제일 먼저 화면에 나온 건 58년간의 운행을 마치고, 이제 퇴역하는 수인선 협궤열차의 모습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관람객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한 시대가 사라지는 것만 같다는 그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오래된 뉴스 자료화면 속에서 2량짜리 꼬마 기차는 마지막 운행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걸고, 수많은 환송객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달리고 있었다. 정차역마다 사람들은 몰려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자는 여러 사람에게 소감을 물으며, 많은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줬다. 삼십 년 전의 풍경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들의 ‘한 시대’를 생각했다. 누구는 더 활기차게, 누구는 이제 퇴역을 준비하고, 또 누구는 그날의 수인선 열차처럼 이미 운행을 멈추고 돌아가기도 했을 삼십 년을 생각했다. 어쩐지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오래전 사라진 수인선 협궤열차의 흔적을 다시 만난 건 오목천역 부근에서였다. 오목천역에서 내려 방통대 캠퍼스까지 네이버 지도의 도보 코스 검색을 했을 때 내가 가야 할 길은 ㄱ자로 꺾어진 모양새였다. 좀 더 빨리 갈 수는 없을까 싶어 손가락으로 지도를 확대했을 때 그 코스를 가로지르는 지름길이 나타났다. 마치 숨어있다가 ‘짜잔!’ 하고 나타난 것처럼. 정말이지 ‘얻어걸렸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분명 지도상에 있는 길인데 왜 도보네비는 안내하지 않는 걸까. 의문은 그 길을 찾아 들어서고야 풀렸다. 좁은 샛길이었다. 차도는 아예 없고, 자전거길과 도보 길로만 구성된. 하지만 엄연히 지름길을 찾아낸 기쁨에 유레카! 를 외치며 그 샛길로 들어서 몇 걸음 걸었을 때 뭔가 이상했다. 주변에 비해 너무 잘 가꿔진 도보 길과 공원이 낯설면서도 알 수 없는 기시감이 함께 느껴졌다. 그제야 바닥의 선로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내 나타난 ‘수인선 협궤터널’.     


열차 선로 일부를 산책길과 공원으로 단장하면서 협궤열차가 지나던 터널도, 바닥의 철로도 남겨두었다. 더는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니지 않지만, 그 철로를 따라 걸으며 너무 좋았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을 그저 흔적 없이 없애고 새것으로 바꾸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 기억을 소중히 간직해둔 느낌이랄까. 150미터쯤 되는 협궤터널을 걸어 반대편 터널 끝까지 가는 동안 잊고 있던 수인선 열차의 추억들이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내게로 왔다.      


대학 시절 어느 날, 혼자 소래포구까지 타고 갔던 수인선 열차 속의 부산스러운 풍경. 그날은 장날이었는지 중간 정차역에서 할머니들이 크고 작은 짐을 많이 가지고 타셨다. 장에 물건을 팔러 가는 할머니들의 왁자한 소리 속에서 혼자 소래로 여행가던 나. 자유로움과 뻘쭘함이 조금씩 뒤섞인 채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내다보던 5월. 한창 축제로 들썩이던 캠퍼스 대신 왜 나는 혼자 소래포구까지 협궤열차를 타고 갔던가는 잊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혼자 이곳저곳으로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 살게 된 그 시작은 어쩌면 소래로 가던 그날의 ‘혼여(혼자여행)’가 아니었을까.


낯선 곳에서 뜻하지 않은 추억을 발견한 하루였다. 그건 대학을 졸업한 지 오래지만,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은 공부가 있어 뒤늦게 다시 방통대 편입을 한 덕이다. 오래전 대학 시절에 혼자 기차를 타고 지난 길을, 참으로 많은 시간이 지나 되돌아온 기분으로 걸었다. 협궤터널 안에서 수원과 화성시의 경계를 지났다. 수원에서 들어가 화성으로 나오자 눈앞에 작은 이정표가 보였다. ‘방송통신대학교’

나는 화살표를 따라 샛길을 올라가 캠퍼스에 도착했다. 소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적막 속에서 시험을 봤다. 열어둔 창에서 적당한 바람이 들어왔다. 시절은 달라져서 이제 종이 대신 태블릿으로 시험을 본다. 조용히 태블릿을 접어 반납하고 다시 샛길을 내려가 협궤터널을 통과했다. 이번에는 화성에서 들어가 수원으로 나와 뒤돌아보았다. 협궤라는 이름처럼 작은 열차가 지나다니던 좁고 긴 터널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 오자마자 수인선 협궤열차가 운행 종료되던 날의 뉴스를 찾아봤다. 삼십 년 전의 뉴스화면에서 2량짜리 작고 낡은 열차는 사람들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받으며 달리고 있었다. 

‘한 시대가 사라지는 것 같은 마음이지요’

한 어르신의 말이 뭉클하게 다가왔던 건 이제 달리지 않는 그 꼬마열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열차가 멈춘 이후 흘러간 삼십 년의 세월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그 삼십 년보다도 더 멀리 있는 나의 스무 살 어느 5월의 하루 때문이었을까. 그 무엇 때문도 아닌 것 같다가, 그 전부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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