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딸이 돈 쓰는걸 두고 보지 못했다. 밥을 함께 먹어도 행여나 딸이 밥값을 먼저 낼까 봐 돈을 먼저 꺼내놓았다. 제수비를 드리면, 제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어이 음식을 싸 보내는 가방 안에 봉투를 다시 넣어주었다. 하지 마라, 돈 쓰지 마라, 엄마가 낸다. 늘 하는 엄마의 말이었다.
딸이 행여라도 부모한테 돈 쓸까 봐 그리도 전전긍긍하던 엄마는 이제 안 계신다. 엄마의 딸은 이제 그때의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착실하게 나이를 먹고 있다. 시간이 너무 빨라, 자꾸 나이 먹으니 서글퍼, 라고 말하지만, 그 딸은 이제 안다. 나이를 먹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팔순도 되지 않아 떠나온 곳으로 돌아간 엄마가 더는 나이를 먹지 않는데 나는 점점 나이를 먹고 있으니 이러다 엄마와 친구가 될 판이다. 그뿐인가. 엄마의 언니가 되고, 엄마의 엄마도 될지 모른다.
엄마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딸의 지갑 앞에서 이다. 엄마는 한사코 딸의 지갑을 열지 못 하게 했지만 나는 다르다. 기념일이나 생일에 딸이 무언가를 사주겠다고 하면 나는 마다하지 않는다. 딸에게 하나를 받았다면, 나는 다른 때에 두 개를 주면 된다. 딸도, 나도 서로에게 베풀고 또 받은 셈이니 나는 그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엄마와 내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그건 좀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닌가?”
어버이날 선물을 고르라는 말에 변색 안경을 갖고 싶다고 했더니 딸의 말이었다. 딸은 내가 이제 ‘나이 든 사람’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잊는 것일까. 좋아해야 할지, 고맙다고 해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이제 집밖에 나서면 햇볕 아래 눈물이 자꾸 나오고, 눈이 부셔서 힘들다. 안경을 쓴 사람은 선글라스를 매번 바꿔 끼는 것이 더 귀찮으니 생각해 낸 것이 변색 안경이었다.
나처럼 도수가 높은 렌즈는 대부분의 안경원에서 따로 주문해야 했으므로 완성까지 며칠 기다렸다가 스타필드로 안경을 찾으러 갔다.
“너무 맘에 들어. 이제 눈도 편안하고 좋아. 고마워, 딸!”
선물이란 사준 사람에게 좋아하는 티를 한껏 내주는 것이 도리며 예의다. 변색렌즈를 끼고 당장 인증샷을 찍어 딸에게 보내주었다. 왜들 그리 화장실 셀카가 많은가 볼 때마다 웃었는데, 그러던 내가 스타필드의 화장실에서 거울 셀카를 찍어 전송했다. 햇볕 아래 선글라스로 변한 모습도 보내줬다. 그리고서야 숙제를 해치운 느긋한 기분으로 스타필드를 천천히 구경하다가 나와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햇살은 초여름처럼 덥고, 화사했는데 변색 안경을 낀 나는 확실히 눈부심이 덜했으므로 아주 편안했다. 역시 좋군. 속으로 흐뭇해하며 걸었다. 늘 어릴 것 같던 딸은 이제 제 한몫을 충분히 해내는 성인이 되었다. 이름이 붙은 날이면 크든 작든 인사를 할 줄 아는 딸이 되었고, 직장에선 성실한 직원으로 동료들과도 잘 지내는 듯했다. 자식을 둔 부모에게 있어 ‘여기까지’라는 건 없다. 학교를 들어가면 졸업할 때까지 염려되고, 졸업하고 나면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하며 지켜보느라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한다.
나 역시도 늘 그렇게 딸을 키웠다. 물론, 자식에게 너무 많은 개입을 하지 않고 독립적인 주체로 커나가는 것에 제일 신경을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이 그저 혼자 크게 내버려 두었다는 말은 아니다. 늘 걱정되고 안쓰럽지만, 그 맘을 숨기고 대범한 표정을 짓는 일도 연습해야 했다. 다행히 딸은 자기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
이제 내 차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젊고 건강하던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서 나 역시도 해보지 않은 걱정을 했었다. 두 분만 어디 간다고 하면 맘이 놓이지 않았다. 두 분을 놓고 나 혼자 어디 가는 것도 맘이 불편했다.
어쩌면 인생은, 사람이 나이 먹는 일은 사선으로 뻗어가는 반직선이 아닐지 모른다. 포물선을 그리는 것이다. 젊고 건강하던 한창때의 나이를 지나면 다시 서서히 구부러지는 포물선. 나이 든 부모는 아이가 아니라 성인이지만, 또 한편 성인이 아니라 아이가 된다. 그러니 나의 딸도 언젠가는 내가 늙고 병든 부모를 보듯 같은 맘으로 나를 보게 되지 않을까.
그때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제가 되었든 훗날엔 젊은이들의 도움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그때까지 최대한 오래 내 다리로 걷고, 내 힘으로 돌아다니며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
플랫폼에 앉아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옆에 다리가 살짝 불편한지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와 스타필드의 쇼핑백을 든 할머니가 와서 앉았다.
“잘해놨네, 아주.”
“그러게.”
두 노부부는 이런 말들을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나처럼 스타필드에 다녀오는 길인 듯했다. 잠시 두 부부의 대화가 끊기고,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다가왔다. 지팡이에 힘을 주며 할아버지가 일어서고, 아내가 뒤따랐다. 그때 할아버지가 아내에게 지나가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그래, 이렇게 재미있게 살다가, 재미있게 가면 되는 거지 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하철이 들어왔고, 평일 오후의 텅 빈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그들의 대화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