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샘

학교 이야기

by 봄날

수학 샘.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다.


저 멀리서부터 “쌔앰~” 하고 불렀는데 내가 미처 돌아보지 못하면, “수학쌔앰~~” 하고 기어이 불러세워 인사를 한다.

“쌤~ 질문 있어요.” 하고 쫓아와 문제를 들이밀기도 한다. 간혹 매우 어려운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본적인 문제인지라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풀면 된단다, 하고 알려주면 “우와~ 역시 수학쌤은 대단해요~” 하면서 감탄한다. 십 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반복해서 풀다 보면 당연한 거라고 말하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런 아이들이 있어서 힘든 순간들을 버틴다.


학창시절 유독 기억에 남는 수학 선생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중을 다닐 때 기억나는 한 분은 큰 눈에 쌍꺼풀이 짙고 둥글넓적한 얼굴이 불독을 연상시키는 남선생님이었다. 수업의 시작은 항상 질문이었다.

“원의 정의가 뭐였지? 음... 선생님이 기억이 잘 안나는데, 누가 알려줄 사람?”

그 진지한 표정과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우린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선생님의 기억을 되살려주기 위해 우리의 기억을 되짚어, 혹은 교과서를 찾아가며 개념을 찾아가야 했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주고, 개념을 찾아가도록 하는 선생님의 작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무지를 가장한 발문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춘기 여중생들은 그런 선생님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그걸 배우려고 학교에 온 거라고요, 샘은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 자리에 계신지...’

혼자 투덜거리곤 했다.


여고로 진학해서 처음 만난 수학 샘은 항상 꼿꼿한 자세와 엄격한 표정으로, 깔끔한 슈트 차림을 고집하는 멋쟁이셨다. 판서는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하고 도형을 이용한 설명 부분에서는 자와 컴퍼스를 이용하여 교과서 속 그림보다 정확하게 그려내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도저히 반의반도 따라갈 수 없는 위엄과 엄밀함을 가지셨던 샘.

하루는 반에서 여러명의 아이들이 학교 행사로 수업을 빠지게 되었다. 단 한 번도 수업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일이 없던 샘이 몇몇 빈자리를 쭉 둘러보시더니 말씀하셨다.

“한 사람의 학생에게도 수업결손이 일어나선 안 되는 거죠? 빠진 학생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고,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나올 것 같던 선생님의 그 말씀이 왜 그리 멋있던지, 한사람 한 사람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좋아서, 나는 감동까지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알아버렸다.

학교 행사로 수업 한 시간을 쉴 수 있다면 교사에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그분들의 모습을 추억하며, 지금의 나를 돌아보곤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게 될지, 늘 고민하는 샘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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