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를 결심했다

삼온 사한

by 봄날

J가 재수를 결정했다.

공부는 때가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라고, 노래를 부를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이제 와 일 년 더 해보겠다고 한다.


지난여름, 수시 원서를 쓰기 위해 학교에 찾아가 상담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성적 그대로였다. 바라던 대학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제시된 자료를 보고 있자니 말할 수 없이 속상하고 막막했다. 당사자인 아이는 오죽했을까. 축 처진 아이의 어깨를 감싸주며 조금만 더 힘 내보자고 다독였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의 타당성을 증명하듯, 다독이고 하루 이틀, 아이는 고3이라는 타이틀을 잊은 듯이 행동했다. 그만큼 버겁겠지, 걱정이 많이 되겠지, 이해하려고 노력해 온 것도 여러 날. 그러다가 남들 다 대학 갈 때 너는 한 해 더 공부한다, 진짜 그러고 싶냐, 제발 올해로 끝내자 엄포와 협박을 쏟아내기도 수차례. 고3을 키우는 모든 집이 그럴까, 싶도록 집안 분위기는 ‘삼온 사한’ - 한 사흘 포근하다가 한 나흘 냉랭하다가 - 을 반복했다.


수시 원서를 쓸 때는 핑크빛 희망 기류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만하면 자소서도 훌륭하고, 이제 남은 기간 바짝 해서 수능 최저만 맞춰보자, 고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나 그 후로도 비슷한 날들. 어릴 때는 책에 집중하면 누가 불러도 모를 만큼 집중력이 뛰어났었는데, 어째서 이제는 게임을 할 때만 그 능력이 빛을 발하는 것인지.


수능을 치르고, 한 달을 마음 놓고 게으름을 피우더니 수시 결과 발표가 나기 시작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쳐 접수한 수시 원서들이 하나씩 불합격이라는 단어로 돌아왔다. 원체 속엣이야기를 하지 않는 J였지만, 연이어 나쁜 소식들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마지막 발표를 뒤로하고, 정시 원서를 어떻게 쓸지 생각하고 있냐고 물었을 때야, 재수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숙학원에 보내 달라고, 그럼 진짜 열심히 해보겠다고.


그 결심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었으면 왜 진작에 좀 못 했냐고 타박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대신에 한 번 더 생각해보자고, 기숙학원 비용도 비용이고, 남들보다 1년 더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설득하려 했지만, 아이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른 집 아이들은 알아서 공부도 잘하고, 척하니 대학도 잘 가던데, 남들은 한 번에 가는 대학을 어째서 우리 아이만 못가나, 싶어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가, 이제라도 열심히 해보겠다고 의지를 보이는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가, 천당과 지옥을 여러 번 오고 갔다.


결국 몇 군데 기숙학원을 방문해서 상담을 받았다. 온 가족이 함께 고민해서 그중 한 곳으로 결정을 내리고, 자질구레한 준비물들을 며칠에 걸쳐 준비했다. 이불부터, 목욕 바구니, 샴푸, 칫솔, 치약, 수건에, 속옷과 양말까지. 하나하나 짐을 싸면서 아이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도 함께 했던 모양이다. J를 학원에 들여보내고 돌아서는 길에는 해방감이 더 컸다. 이제 공은 저 아이에게 넘어갔어, 이제 내 할 일은 여기까지야, 같은 안도감에 묵은 체증이 내려간 느낌까지 들었다.




“엄마, 기분이 이상해.”

“긴장돼?”

“아니, 뭐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긴 한데, 그보다...”

“그보다?”

“나도 이제 나이 먹나 봐, 예전에는 몇 시간씩 게임을 해도 괜찮았었는데, 오늘은 눈도 피곤하고, 머리도 아픈 게, 너무 힘드네.”

기숙학원 입소 전날, 실컷 게임을 하고 난 J가 했던 말과 그 순간의 심각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어느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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