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오늘 멋진 옷 입으셨네요? 예뻐요.”
사람들의 칭찬 앞에 나는 얼굴을 붉히며 두 손을 내젓는다. “아휴, 무슨, 별말씀을, 아니에요.” 등의 겸연쩍은 대답을 남기고 그 자리를 피하기 바쁘다. 분명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있어 옷을 골라 입고 나왔음에도, 막상 칭찬을 듣는 일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왜일까?
성장기에 나는 겉치레에 신경 쓰는 일을 경계했다. 외모를 꾸미는 일보다 내면을 가꾸는 것이 훨씬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에 이른 여성들의 모습을 동경하면서, 겉모습을 가꾸는데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던 시기가 있었다. 화장이나 옷 이야기로 수다를 떠는 친구들을 마음속으로 한심하게 생각했었다. 그때 내가 품었던 극단적으로 치우친 마음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어서, 외양에 대한 칭찬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일까?
대학 졸업반이 될 때까지도 화장하는 법을 몰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정장 비슷한 옷을 조금씩 사게 되긴 했지만, 내 출근룩은 주로 단 벌 재킷에 청바지였다. 남편과 연애 초기에, 학교에 출근할 때도 그렇게 청바지만 입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참고로, 우린 부부 교사다. 그 당시 새내기 교사였던 나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교육에 진심인 마음이 중요하지, 복장이 무슨 문제가 되냐고 반박했다. 남편은 기본적인 외양을 가꾸는 것도 직장 동료나 아이들에 대한 예의이며 교사의 단정한 옷차림은 교육의 연장선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결국 나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말았다. 그가 나보다 사회 경험이 많은 선배 교사이기도 했고, 한참 그에게 예뻐 보이고 싶을 때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 치마도 입기 시작했다. 예쁜 원피스를 보면 사고 싶어 졌고, 출근할 때는 적당히 차려입은 느낌을 내는 것이 좋아졌다. 요즘은 드라마에서 연예인이 입은 옷을 보면서 와, 저 옷 예쁘다, 감탄하며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한다. 여전히 화장은 관심도 없고 잘 모르지만, 지금의 내게는 외적인 영역의 칭찬을 듣는 일도 기분 좋은 일임은 어쩔 수가 없다.
“아, 근데 저는 출근할 때마다 옷에 신경 쓰기가 왜 이렇게 성가신지 모르겠어요.”
점심을 먹고 잠깐의 커피 타임, 교무실에서 꽤 젊은 편인 선생님의 한탄에 K샘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말을 받았다.
“나도 그런데? 어차피 종일 분필 가루 날리는 교실에서 아이들이랑 씨름하다 보면 땀이랑 먼지 범벅이 되는데. 멋진 옷을 차려입으면 뭐 하겠어?”
너도나도 작은 한숨과 끄덕임으로 동의하는 분위기 가운데, 확신에 찬 K샘의 말이 이어진다.
“우린 노동자야. 노동자가 일하러 오면서 작업복을 입고 와야지. 안 그래?”
“하하하, 그럼요.”
다들 즐겁게 웃으며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는데 나만 혼자 그날의 내 복장을 살핀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외모에 신경 쓰는 속물적인 교사가 된 것은 아니겠지? 괜히 뒤돌아보며 또다시 흔들리는 내 모습이 참 별로다. 나는 왜 남편이나 K샘처럼 일관되게 내 생각을 펼치지 못하는 것인지.
우울하게 보내던 어느 날, 학부모를 상대하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후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신규 교사 때 내가 했던 실수들과, 아이를 키우면서 매 번 후회했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자신은 육아 경험이 없어서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반성하고 생각을 키워나가며 다시 학교에서 그 생각들을 반영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고 말해주었다. 샘도 나처럼 오랜 기간 경험이 더해지면 그렇게 될 거라고 했더니, 주변에 많은 학부모와 동료 교사를 보아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해주어 은근히 뿌듯해졌다.
집에 돌아와 그녀와의 대화를 되짚어 보았다. 나의 흔들림은 때때로 내게 혼란과 선택 장애를 일으키지만, 또 그렇게 그때그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내 안에서 고민하게 해 왔다. 어쩌면 나는 늘 흔들리면서 내 안의 기준이나 가치를 수정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흔들리는 나를 조금 덜 부끄러워해도 되지 않을까?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흔들리는 사람이다. 당신의 말도 맞고, 또 다른 당신의 말도 맞으니, 나는 그 안에서 흔들리며 내 안의 절충안을 찾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