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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Nov 24. 2021

말하지 못하는 이를 위한 목욕법

귀찮아도, 힘이 들어도 더 마음을 낼 수밖에

 조리원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아이와 처음으로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 앞에 쌓인 택배 산성을 헤치고 현관문을 열어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를 먼저 집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선 집 정리를 시작했지요. 이런저런 끝나지 않는 일들을 계속하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습니다. 중간중간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토닥이며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니 추운 날씨인 것도 모르게 땀이 송골송골 맺히더군요. 평소 같았으면 고단하던 하루가 분명 마무리될 시간이 됐는데도, 일일 마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칭얼대는 아이 목욕을 시켜야 할 텐데…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더군요. 갑자기 저 멀리에서 조리원 선생님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겨울에는 아기가 추우니까 매일매일 목욕을 시키지는 않아도 돼요.”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새내기 부모에게 적절하고 필요한 말씀을 남겨주셔서요. 아이 목욕은 다음날 시키기로 아내와 합의를 본 후 같이 침대에 누워서 누구의 것이라고 구분할 필요도 없이 함께 신음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피곤함에 붙들려 잠깐 숙면의 세계에 빠져들뻔했는데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돌아섰다가 또다시 우는 소리에 아이에게 젖병을 물려줍니다. 트림까지 시켜내자 새근새근 잠에 빠진 아기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뉘엿뉘엿 침대 위로 올라와 선잠을 이루고 있는데, 더 우렁찬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이를 좌우로 살피면서 이것도 확인해보고 저것도 확인해보아도 울 이유가 없는데 도무지 울음을 그칠 기색이 없습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서 아내와 함께 아무래도 건너뛴 목욕이 문제가 아니었나 반성해보았습니다. 집에 온 첫날 아기도 땀 흘리고 똥도 지렸을 테니까요… 아이고. 미안타.


 그리하여 새롭게 시작된 하루의 가장 최우선 미션을 아기 목욕으로 설정했습니다. 밤 사이 찝찝하고 불쾌했을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요. 따뜻한 물을 채운 아기 욕조 두 개를 거실 바닥에 늘어뜨려놨습니다. 아무래도 욕실이 아기에게 추울 듯했기 때문입니다. 물이 찰랑거리는, 무거운 아기 욕조를 두 팔로 들고 옮기다 보니 샤워기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됩니다. 샤워기나 수전으로 바로 물을 틀어 빠르게 아이를 씻기는 게 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떠오르다가도 그러면 안된다는 말이 상상 속의 시도를 가로막습니다. 신생아에게 샤워기로 물을 바로 쏘아선 안된다고 하네요. 샤워기를 사용하다가 갑자기 물 온도가 바뀐 경험을 다들 해보셨겠지요. 만약 아이에게 틀어 놓은 물 온도가 갑자기 뜨겁거나 차가워지면… 말 못 하는 아이는 울기만 할 뿐, 목욕을 시켜주는 부모는 아마 그 사실을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화상이라도 입으면… 상상하기에도 끔찍하기만 합니다.


 아직 목도 못 가누는 아이를 들어서 욕조에 두고 씻기는 게 참 어렵더군요. 몸을 지탱할 힘은 없으면서 어쩜 그렇게 바둥바둥거리는지. 아이가 손을 자기 얼굴에 올리려고 시도할 때마다 얼마나 마음 졸이게 되는지. 신생아는 평상시에 양 팔을 속싸개나 비슷한 것으로 몸에 붙여놓는데, 자기도 모르게 손톱으로 얼굴이나 몸을 긁으면 바로 생채기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아기 얼굴에 상처 날까 손까지 신경 쓰며 신생아용 샴푸로 머리도 감기고 몸도 씻겨냅니다. 처음 시켜본 목욕이다 보니 예정보다 시간이 지체되고, 몸이 젖어서 아가 체온은 떨어지고, 받아놓은 욕조 속 물은 식으면서 아이가 추웠는지 울기 시작합니다. 아이 몸은 더 움직임이 커지고, 울음소리에 미안하고 긴장되고, 어느새 아내와 제 이마에는 땀방울이 또 맺힙니다. 얼른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주면서 옷을 입히니 드디어 목욕이 끝이 납니다. 다음날이 되면 또다시 해야만 하는 일이겠죠. 다만 더 능숙해져서 아이가 덜 불편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신생아 목욕이 여러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목욕을 할 때도 샤워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꽤나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물이 차가워도 차갑다고 못하고, 뜨거워도 뜨겁다고 말을 못 하는 아이를 씻길 때는 한 줌씩의 물로 도와야 합니다. 한 사람의 몸을 붙들고 있는 것도 힘이 드는데 물도 한 움큼씩만 떠서 씻겨줘야 한다니요. 시원스럽게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샤워기에 비해 귀찮고 힘이 드는 방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줘야 하겠지요. 신생아는 말을 못 하니까요. 그래서 보호자는 더 조심하고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필요 이상의 방법으로 케어를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표현을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힘이 약하거나 말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지쳤거나, 절망감으로 또 의지가 꺾여서… 아프고 도망치고 싶어서… 만약 그들을 돕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에게 뜨거우면 뜨겁다고, 차가우면 차갑다고 말을 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을 할 수 없는 분들은 아마 감기에 걸리거나 화상을 입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우려고 했던 건데 더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보면서 마음 아프기 싫어 괜스레 아픈데 왜 얘기를 안 했냐고 다그치고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을 할 수 없는 이들을 돕기 위해선, 정말 조심스럽게 살펴주고 당연하게 해오던 것보다 더 많이 배려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돕고자 하는 이를 사랑할 때만 가능한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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