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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Nov 08. 2021

힘을 내야겠습니다.

힘이 나니까요.


얼마 전, 아이의 출생을 앞두고 걱정과 불안,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밤 중의 몸부림에 대해 글을 올렸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분만실 안에서 아내가 기운 없는 얼굴로 아이를 위해 힘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의료진이 하라는 대로 하다가 아내 옆에  있게  내가   있는 것이라고는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  밖에 없었습니다. 신음 소리와 ',  ' 외치는 의사의 말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저는 적막함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갓난쟁이의 미약한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굳어있던 어른들의 표정은 풀어졌고 고통을 버티던 아내의 얼굴도 편해졌고, 적막함으로 두렵던 나의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이제  세상에 나온 아기 목소리에 힘이 담겨있을  만무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울음소리에는 이상하게도 생명력이 담겨 있었나 봅니다. 누군가 출생한  처음으로 내는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 진짜 태어나는구나. 우리 딸아이가.


아내와 함께 병실에서 3박 4일을 생활했지만 아이의 숨소리를 들어보지도, 피부의 온기를 느껴보지도 못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하루에 두 번, 투명창을 넘어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을 잠시 지켜볼 수만 있었습니다. 빨리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신생아실로 아이를 맞이하러 가는데 간호사님이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넘겨주시려고 했습니다. 어? 그런데 갓난아이는 어떻게 안아야 하는 걸까요. 어버버 데다가 자연스럽게 아내가 아이를 받아 들었습니다. 차를 타고 함께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러 가지 예방접종을 맞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중 BCG라는 것을 퇴원하면서 접종했는데 조리원에서는 BCG 접종 아기는 조리원에서 부모와 한나절 정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처음 보는 방 안에서 처음 만나는 아이와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조리원 선생님의 말대로 아이의 머리와 등을 받치며 안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가 제 잘못으로 다칠까 봐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잠깐 안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양쪽 어깨가 다 굳어버렸습니다.


갓난아기 똥은 냄새가 안 났습니다. 오줌도요. 살짝 들어 올려 기저귀 가는 법을 배우면서 이제 제대로 시작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삶이. 누워있는 아기가 금세 잠에 들었습니다. 미세하게 아이의 배가 올라갔다 내려갑니다. 얼굴에 귀를 가져다대니 사람의 숨소리가 들립니다. 신기할게 하나 없는데 너무나 신기합니다.


자는 아이 얼굴이 이뻐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스스로를 알아차립니다. 아무래도 행복한 것 같습니다. 잠도 잘 못 잘 정도로 걱정이 컸는데, 지금은 그저 아기가 이쁘기만 합니다.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힘을 내야겠습니다. 신기할게 하나 없는데 너무나 신기하기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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