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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Dec 09. 2021

당신의 똥으로 인해

그대는 사랑이었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자리에서 자고 있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뜨끈뜨끈해진 기저귀를 갈아줬다. 다시 책상에 앉아 처리할 것들에 손을 대려는데 다시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고픈 것 같아서 분유를 타 줬다. 꿀떡꿀떡 넘기더니 기어이 비어버린 젖병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안고 트림이 잘 나오도록 토닥여주니 스르륵 잠에 들었다. 조심스레 아이를 내려놓고 다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걱정했다. 그런데, 또다시 아이가 나를 찾는 것 같았다. 기저귀도 깨끗했고, 배고플 시간은 아직이었다. 잠도 잘 잤겠다, 뭐가 문제일까. 아이의 배가 공처럼 부풀어 있었다. 살짝 건드려보니, 풍선처럼 빵빵했다.


“여보, 하람이 똥 언제 쌌나?”


“이틀째… 아직.”


 똥을 못 싼 우리 아기는 괴로움에 목청껏 울었다. 가스가 차 있는 배가 얼마나 답답할지. 배출시키고 싶어도 신체 어디에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는 방귀도 맘대로 뀌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다른 건 다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데, 똥만은 어찌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손바닥 만한 몸 안을 채우고 있는 똥이란 녀석을 어떻게든 아기로부터  쫓아내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다. 아기의 신음소리에 조바심이 난 나와 아내는 발만 동동 굴렀다.


 잠시 후 부욱-.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여보! 하람이 똥 쌌어?”


 기저귀를 들쳐본 아내는 아니라고 했다. 칭얼대는 아기를 진정시켜주려고 안고 방 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또다시 부욱-. 이번에는 구수하고 숙성된 냄새가 올라와 기대감을 가질만했다. 


“여보, 혹시?”


 이번에도 역시였다. 빵빵한 배로 울상을 짓는 아이를 보는 게 참 어려웠다. 그러나 해줄 수 있는 것이란 별달리 없었다.


 해야 할 일을 계속했다. 어쩌겠는가. 별 수 없지.


“여보- “


 아내가 나를 찾는다. 


“하람이가 쌌어-“


 오 마이 갓. 큰 걸음걸이로 금세 방을 가로질러 환하게 미소를 짓는 아내를 발견했다. 아내를 바라보는 내 표정도 환했다.


“잘했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기쁘다! 큰 일 했어! 훌륭해-!” 


 나는 온갖 칭찬을 해가며 기저귀를 치웠다. 똥이 묻은 아이의 엉덩이를 씻겨줬다. 따뜻한 물을 즐기는 아이를 안고 문득 생각했다. 아기는 똥만 싸도 이렇게 칭찬을 받는구나. 똥만 잘 싸도 부모가 이렇게 기뻐하는구나. 아기가 조금 부러웠다. 똥뿐만이랴. 밥을 잘 먹어도 기쁠 것이고, 잠을 잘 자도 기쁠 것이다. 학교를 가면 어떨까. 친구를 사귀면. 똥이 이 정도의 기쁨이면 도대체 다른 건 어느 정도의 기쁨을 선사할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아기였다. 태어나 울었을 때, 젖을 물고 열심히 빨았을 때, 똥을 쌌을 때, 배냇짓을 했을 때, 나의 부모도 기뻐하지 않았을까. 더 생각해보니,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도 아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의 똥으로 인해 누군가는 분명히 세상 다 가진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나와 당신은 비록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해 괴로움에 빠졌을지언정, 똥 싸고 밥 먹는 것만으로도 기뻐해 줄 누군가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우린 그런 존재였다. 그냥 살아있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 사람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주는 존재였음이다. 이것은 아주 오래전 잊어버린, 잃어버린 우리 삶의 진실이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나는 하람이의 똥으로 인해 그것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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