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씨 Feb 27. 2022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아기와 부모의 대화법


언어를 좋아했다. 문장부호, 그러니까 대화 중에 끝을 올리는지 내리는지, 또 흘리는지 짧게 맺는지에 따라 같은 말이 다른 뜻으로 변한다. 같은 뜻을 가진 단어가 문장 뜻을 바꾼다.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것에는 관심과 시간을 쏟게 된다. 좋은 점이다만, 다르게 보면 재미없는 것에는 그만큼 집중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비언어적 소통에서 끔찍하리만큼 약했다. 저 사람의 표정이, 손짓이, 날숨과 들숨의 속도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어도 나는 그것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종종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분명 어떤 말을 했음에도 시간이 지나서 보니 말한 사람의 마음은 말과 다른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과의 대화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이었고 다른 것도 함께 살펴보아야 해석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행동으로 진의를 파악하는데 오류가 많다. 혼란스러움에 사람과의 대화가 무서워서 피하고 싶은 적도 있다. 결국 내가 찾아낸 해법은 뜻을 알기 모호한 행동의 해석을 멈추고 아주 언어적 소통에만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런 나로 인해 함께 고생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내였다. 아내는 자신의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 표정과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을 편해했다. 연애시절, 아내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말해달라고 했다가 몇십 분을 서로 말없이 테이블에서 마주 보기만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순간과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보내면서, 우리 나름의 방법을 마련했는데, 아내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그것을 언어로 정리할 시간을 가진 후에 대화를 하는 것이다. 아내는 연애할 때보다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덕분에 내가 아내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감사했다. 바꿔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아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그 뜻을 잘 몰라준다는 것이며,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가 태어날 즈음, 나는 아이가 얼른 말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하고 다녔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재미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 아이의 시선에서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아빠가 좋은지 엄마가 좋은지 질문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것도 아주 흥미진진할 것이다. 새로 가족이 된 존재와 어서 소통하고 싶었다. 아이가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가 되려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할까. 그런 내 얘기를 듣던 어떤 분이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소통할 수 있다고 답했다. 나는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그리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지식이 아직 없을 아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읽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117일이 되었다. 이제 옹알이를 한다. 뒤집기를 하려고 용을 쓰다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다. 뒤집기를 도와주면 새로운 자세가 재미있는지 웃다가 다시 돌아누우려고 애를 쓴다. 돌려주면 다시 반복이다. 배고프면 자기 손을 먹는다. 만화에서나 들을 것 같은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분유를 먹이는데 배가 고픈지 꿀떡꿀떡 거리며 잘도 먹는다. 먹다가 배가 부르면 자기 손으로 젖병을 치운다. 다 먹었구나 싶다. 입이 툭 나와있으면 기분이 안 좋다는 신호다. 내가 아기 앞에 얼굴을 들이밀면 활짝 미소 짓는다. 아기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느낀다. 나도 너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활짝 웃는다. 아기와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소통한다는 말을 이제 알 것 같았다. 아이와 나는 언어로 대화를 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내게 있어서 또 다른 신비다. 아마 다른 부모들도 마찬가지 경험을 하고 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결론을 말하자면, 음... 앞으로 아내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살피는 남편이 되어야겠다는 것으로 하면 될 것 같다.





이전 06화 당신의 똥으로 인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