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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Sep 23. 2022

걱정

지금과 앞날의 무게 비교


 결혼 후 아이를 가지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사실 나는 결혼 전부터 아이를 갖지 않으리라고 아내 될 사람에게 이야기해왔다. 당시 여자 친구는 그러냐고 할 뿐이었는데, 혼례를 올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있던 사람이었다. 많은 고민과 갈등의 시간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이를 원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나의 부모가 행했던 과오와 그로 인하여 내 인생에 새겨진 상처를 내가 되풀이하는 것은 아닐까, 경제적 책임을 지지 못해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면 어쩌나 같은 걱정들이 원인이었다. 나의 주저함과 아내의 눈물이 오랜 시간 쌓이고 난 후에야 나는 그것을 뛰어넘어 결단을 할 수 있었는데, 사랑과 아내에 대한 신뢰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었다. 아이가 없는 삶으로는 이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웃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 무언가 인생이 충만한 기분이 든다. 지금은 11개월이 다 되어가는 딸아이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이다. 딸이 주는 행복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걱정의 무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깊다. 만약 내가 그 걱정에 붙들려서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삶이 얼마나 건조했을까. 인생에 있어 얼마나 큰 손해였을까.


 뒤돌아보면 '걱정'으로 인해 내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어느 정도나 되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을 결정할 때, 철학과를 갈지, 국어국문학과를 갈지, 사회복지학과를 갈지 고민을 했다. 고민하는 당시에 철학과와 국어국문학과는 재미있고 좋을 것 같은데 아마 취업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더랬다. 사회복지학과는 정말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증가할 테니 일할 곳은 많겠지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로 결정하게 되었다. 결과는 별로 좋지 못했다. 하고 싶은 걸 할 걸 그랬다.


 누군가 대학생 시절로 되돌아갈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아마  많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사랑하는 경험을 많이  것이다. 학점이  삶의 발목을 붙잡을  같아 과제를 해야 한다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친구들과 보낼  있는 시간을 거절하고 외면했었다. 조금  행복한 20 시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런지.


 직장인이 되어서 내 실수와 실패로 인해 직장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온갖 스트레스와 불안에 빠져서 지냈다. 꼼꼼하게 일을 해올 수 있었지만, 너무 힘들었다. 힘에 부쳐 오래 직장을 다니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패하면서 배우고 실수하면 사과하고 다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누구 하나 나가라고 말한 적 없는 직장을 내 손으로 놓아버린 게 몇 번이었는지 모른다. 만약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조금은 마음 편하게 지내라고 하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의미 없지만.


 언제나 나를 가로막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 앞날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싶다. 의미 있는 지금 여기보다 미래를 더 크게 생각하는 것이 삶을 더 어렵게만 만들었다. '지금'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9월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내가 출근하지 않아도 수당을 받으며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1년 주어졌다. 얼마나 좋은가. 올해까지 육아휴직인 아내와 함께 휴직기간이 겹쳐서 세 식구가 함께 몇 달을 같이 있을 수 있다. 인생에서 이런 시간은 아마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기회에 제주도 한 달 살기, 친구 부부와 해외여행 등의 일정도 잡았다.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내가 같이 있어도 눈물을 흘리며 울던 아이는 어느새 매일 시간을 같이 보내는 아빠 하고만 있어도 잘 놀게 되었다. 오히려 엄마하고 있을 때 아빠를 찾기도 한다.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걱정에 빠져든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냐고, 그건 너에게 큰 손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던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올해 36살이라는 나이를 가진 채, 별다른 경력과 특별한 재능도 없는 나의 모습이 불안하다.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데 고금리 시대의 매일 같이 오르는 대출이자와 큰 대출금을 갚는 일이 막막하다.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던 내가 변변찮은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앞으로 남은 인생을 회색빛으로 물들이는 것만 같다. 아버지로서 아이가 아플까,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할까, 아이가 행복하지 않을까, 그렇게 실패한 아버지가 되어버리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 든다. 그 모든 괴로움들이 감사하기만 해도 부족할 지금을 오염시킨다. 주어진 1년이 지나고 나면 나는 과연 이 시간을 아쉬워할까, 정말 좋았다며 만족해할까. 나는 내가 아쉬움으로 점철된 내 이전의 삶들을 철저히 반성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걱정과 불안, 근심으로 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할 사람들과 충분히 좋은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감사가 넘치는 나의 지금을 살기를 스스로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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