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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Nov 25. 2022

카세트


얼마 전 아기, 아내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다가 문득 DJ DOC의 DOC와 함께 춤을 이란 노래가 떠올라 어깨춤을 추며 신나게 불렀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 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 내가 밥 먹을 때 한 마디씩 하죠. 너 밥상에 불만 있냐. 아기는 신이 났는지 박수를 쳐대고 아내는 당황스러워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노래 가사를 잘 외우지 못하는 나는 틀린 가사로 노래를 부르거나 떠오르지 않는 다음 가사로 멈칫 멈칫했는데, 가사를 잘 기억하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다시 열창을 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기분이 좋았다. 노래가 끝나고 아내는 갑자기 왜 노래를 불렀냐고 물었다.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는 않았다. 마땅히 할 말이 없어 머뭇거리다가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나 2학년이었을 것이다. 가정형편이 어떤지 알 수도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던 때. 컴퓨터도 없었고, 휴대폰도 없었다. 가끔 엄마와 아빠가 김치찌개와 소주가 올려진 밥상을 사이에 두고 소리를 지르고, 그럴 때는 긴장한 채 싸우지 마세요라는 말을 건네던 시절. 그럼 엄마는 싸우는 게 아니라고 했었다. 어느 날 저녁 엄마가 나를 이끌고 역전 주변에 있던 삼성 전자 매장을 갔었다. 거기서 라디오 기능이 있고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줬다. 라디오를 들으려면 안테나를 길게 빼줘야 했던 물건이었다. 처음으로 생긴 카세트 플레이어가 신기했고, 그동안에는 음악을 듣는다는 개념이 없었는데, 이제 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카세트테이프가 없었으므로 당시 동네에 흔하게 있던 테이프 매장을 방문했다. 어떤 가수가 있는지, 어떤 노래가 좋은지도 모르는 어린이에게 매장 주인은 테이프 하나를 추천해줬다. DJ DOC의 앨범이었다. 거기에 DOC와 함께 춤을 이란 곡이 수록되어 있었다. 당시 카세트테이프를 사면 가사지가 들어있었다. 방에 누워 그 카세트 플레이어로 테이프를 얼마나 들었던지. 작은 글씨로 인쇄된 가사지를 들고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노래를 얼마나 흥얼거렸는지. 방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신경 쓰이지도 않고 안락한 나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 카세트와 테이프를 샀을 때, 내가 참 신이 나있었지. 옆에 라디오를 틀어놓고 잠자는 걸 좋아했었지.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러 나를 매장에 데려갔던 엄마와 손 잡고 가던 그 길에 조금 행복했었지. 잃어버렸던 기억을 찾아서 감사했다. 동시에 회색 빛으로 덮어진 유년시절에 약간의 색깔이 생긴 것 같았다. 조금 푸근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괴롭고 힘든 기억만 간직하고 살게 된다. 분명 좋았던 것도 있었을 텐데, 행복했던 것도 있었을 것인데 떠올리려고 하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누군가 행복했던 기억으로 괴로운 삶을 버텨내는 거라고 했었는데, 그런 면에서 내겐 힘이 없었다. 분명 내 삶에도 있었을 행복한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르면 좋겠다. 떠오른 기억들을 다시 잃어버리지 않게 잘 기록해두면 좋겠다. 그래서 삶에 맞서 버텨낼 힘이 내게도 생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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