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프롤로그
가장 k스러운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서 가장 k 같지 않은 k장녀로 태어났다.
그런 내가 많이 깨지면서 깨달은 이야기들을 해보고자 한다.
나는 아직도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른다. 뭔 헛소리냐면, 내가 나를 인정해야 세상이 나를 인정할지 세상이 나를 인정해 줘야 내가 안정적으로 인정받으면 살지. 라임 죽이는 말로 한탄을 했지만 아직도 그걸 전혀 모르겠다는 뜻이다.
마이웨이. ENTP. 유아독존. 4차원
내가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들어온 말들이다. 정확히는 20대 초중반까지 들었다. 나도 철이란 게 들어서 한국에서 저런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조금 귀찮아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여러모로 깎아내리고 숨기며 타협하면서도 나의 개성과 중심은 잃지 않으면서 꽤 삶을 즐기고 있다.
요즘 상황이 거지 같지만 나는 잘 지내고 있단 뜻이다.
이젠 심리상담과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는 게 남들에게도 별 일이 아니다. 사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성이나 자신만의 철없음을 갖고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정형화된 인재가 아니면 살아가기 힘드니까 그걸 죽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욱 우리가 병들어가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퇴사를 하고 다시 취업준비를 하는 이 기간 동안,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프로젝트를 주었다. 이 글은 몇 년 뒤의 내가 보면 '아씨 부끄럽네. 뭐 저런 걸 대단한 걸 깨달은 것처럼 적어놓은 거임'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나이치고는 다양한 사람들, 경험들을 겪으면서 알게 된 삶의 조각들을 한번 적어보려고 한다. 나처럼
이렇게 살아도 큰일 나지 않는다고.
큰일 나더라도 큰일 하면서 살면 된다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무서웠던 20대 초반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서.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철없던 시절에 알았다면 좋았거나 고집이 쎄서 내가 짱이던 내가 알면서 더욱 겸손해지고 삶을 밀도 있게 살게 되었던 그런 이야기들도 적으려고 한다. 알다시피 우리 모두 성급하고 조급했던 흑역사정도는 있잖아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국에서 가장 한국다운 여성과 남성이었다. 그런 그들의 밑에서 내가 나온 건 아직도 신기하다.
어머니는 자주 후회한다. 결국 내식대로 사는 게 나에게 맞았다고. 너무 어렸을 때 한계를 지었고 더 눈에 띄지 말라고 했다고. 자신과 달라서, 남들과 조금 달라서 고생길이 보였을 딸에게 그가 어떤 마음으로 걱정을 했을지.
곧 엄마가 날 낳았을 때의 나이가 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엄마가 이해하지 못한 방향으로 튀어나가지만 잘 살아간다. 엄마는 엄마만의 브루스 리듬을 타면서 여전히 락앤롤 리듬으로 헤드벵잉 하며 살아가는 나를 그저 바라본다. 쟨 참 신기하다고 웃으면서.
하지만 나는 맞지 않았다. 몰랐고 틀렸고 누군가는 아프게 누군가는 상냥하게 알려줬다. 많이 깨어지면서 깨달았다. 깨달았지만 적용하기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했다.
그걸 여기에 찬찬히 담아보려고 한다. 몇 년 뒤 내가 쓴 이 모든 말들이 철없고 이상해서 그때의 내가 이 매거진을 지웠으면 좋겠다. 그만큼 내가 여기서 또 성장했다는 증거니까. 벌써 멋지다 그때의 나.
살아남고자 브런치를 시작했으나 살아가고 있다. 발버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나의 소중한 인생이더라.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남들도 나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한다.
살아남지 않아도 된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