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사는 우리는 어떤 일이 끝난 이후에 다른 일들을 챙기려는 습관이 있다. 수능이 끝난 후 건강 관리를 한다거나, 시험이 끝난 후 방 정리를 한다거나.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기 자신과 주변 환경을 잘 관리해야 한다.
건강이나 남들의 시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삶에 임하는 나의 태도와 기분이 더 좋아진다.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면서 시험 끝난 날에 방을 청소한다고 해보자. 바퀴벌레와의 아이컨택을 무시하며 공부를 했지만 정작 시험이 끝난 날은 피곤하다. 심지어 어지러운 방을 보니까 기분도 안 좋다. 사실 이미 공부하면서 바퀴씨와의 아이컨택에서 기분이 이미 다운되었다. 그냥 침대에 들어가서 이불을 덮어쓰고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막고 캄캄한 어둠 속에 나 자신을 가두게 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이 자주 하는 묘사가 있다. 하루하루 자신의 건강, 기분, 옷차림 등을 주시하고 관리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언제 가스실로 끌려갈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옷을 정리하고 면도를 하는 건 무슨 허세람?
수용소는 포로들에게 고문도 시켰지만 일도 시켰다. 그렇기에 당장 죽을 것 같은 모습이면 가차 없이 가스실로 보내졌다. 일도 시킬 수 없는 존재라 판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면도를 하고 멀끔하고 혈색이 좋은 빅터는 '생산적'인 사람으로 분류되었고 가스실행을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이뿐인가. 빅터는 면도를 하면서 자신의 '삶'을 실감했을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 있는 이 기간도 자신의 일상이자 삶이라고, 여기서 나가기 전에는 죽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을 살아내어서 수용소에서 나온 이후의 삶도 지켜낼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내 브런치니까 내 얘기를 좀 해보겠다. 나는 취업준비를 하면서 20kg 가까이 살이 쪘다. 살이 찌기 전에도 마르기보다는 통통에 가까웠으니 살이 찐 후는 비만을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외모도 문제지만 일단 몸에 무리가 가기 시작해서 나는 체중을 감량해야 했다. 갑자기 어린애 한 명이 태워졌으니 관절부터 피부, 장 모두 탈이 나기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오히려 폭식을 하고 살을 빼지 않았다. 일단 취직을 하고 나서 나를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취직을 해야 돈이 생기고 시간도 생기고 스트레스도 안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전에는 취직준비 외의 다른 행동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는 큰 착각이었다. 취직준비를 하면서도 운동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글을 쓰면서 놀 수 있었다. 내 삶의 활력을 포기해도 되는 순간은 없었다.
가끔 우리는 죽음의 수용소에 보내진다. '진짜로' 보내진 게 아니라면 우리가 착각하고 있을 때가 많다. 지금 나는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시기를 지내고 있다고, 나에게 활력이나 자기 관리는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면도를 하던 작가를 생각해 주길.
아니면 다시 몇 번째의 신입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옷을 다려 입고 운동을 나가는 백수 브런치 작가를 생각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