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자기 계발서와 조언을 끊어야겠다.

추석에 쓰는 의식의 흐름의 글

by chul

어렸을 때부터 잘 들어온 칭찬이 있다. 피드백을 잘 수용한다, 도전을 잘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조언을 구해도 그대로 해도 안 되었고 자기 계발서는 모두 나에게 달려있다고 한다. 자기 계발서와 멘토들을 신봉했던 나는 이제 무기력하다.

내가 모든 것을 잘못한 것 같고,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살아있는 게 번거롭다. 왜 태어났나 싶다. 나는 그런 나의 모습과 심정을 들키기 싫어서 아직 30대도 안 되었으면서 누군가에게 조언하는 글이나 썼다. 그걸 엮어서 브런치북으로 만들려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다. 나는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나의 감정조차도 남들이 인정해 주고 허락해 줘야만 느꼈다.


30대 이후로 삶이 안정된다고들 한다. 그건 20대 때 그런 삶의 바탕을 부단히 잘 만들어낸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제대로 된 직장 하나 없는 나는 30대가 몇 달 안 남았다. 이대로라면 그냥 무직 30살 여성이 될 게 뻔했다.

20kg 넘게 불어난 체중, 실패한 반수, 복학 후 낮은 전공 점수, 유일하게 전환 안 된 인턴, 최저시급 받으며 일했지만 갑자기 한 게 없다며 정규직에서 반강제 퇴사한 매니저, 직장 내 괴롭힘으로 1년 버티다 백수가 된 신입.


이 모든 과정에서 전공과 다른 길을 걷고, 괴롭힘에서 버티다가 퇴사를 하고, 건강하게 사는 듯한 나를 모두 칭찬했다. 자기들은 그렇게 못 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나는 힘들어해도 안 되었다. 자신이 내 멘토이자 선배라던 어른들은 본인은 내게 심한 말을 해도 되었지만 내가 그로 인해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가족도 있었고 상사나 선배나 친구도 있었다.


사실 나는 피드백을 잘 수용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냥 남들의 인정이 있어야만 일을 진행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전환이 빠른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냥 남들보다 쉽게 가려고 오랫동안 뭘 못 버티고 바꾼 사람이었다.


그러자 그 모든 일들이 나의 탓처럼 느껴져서 괴로워졌다. 남들이 날 괴롭힌 것도 내가 눈에 띄어서, 신입답지 않게 자신감이 넘쳤어서, 알맹이는 없는 주제에 뭐라도 된 것처럼 굴어서. 뭐, 다 직접 들은 말이다. 자신들도 인사권 없으면서 날 자르겠다고 협박한 같은 팀 리더들에게 말이다.

나도 어느 순간 궁금했다. 나는 평범한 사회초년생이다. 누구나 하는 실수 정도도 했다. 자소서도 이력서도 잘 못 쓸 때도 있어서 코칭도 받았다. 공부했지만 성적이 안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남들은 나보다 못해도 잘만 대기업을 갔고 나만큼 간절하지 않아도 좋은 직장과 커리어를 가졌다. 내가 얼마나 더 여기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과정과 결과에 자신이 없어지자 과정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면 그냥 살아있기만 한 존재가 될 뿐이라 소속이든 뭐든 가지기 위해 다시 자소서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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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해야지, 로 끝나면 글이 아니라 일기라고 한다. 그런데 내 브런치니까 그냥 쓰려고 한다. 나는 이제 나로 살려고 한다. 사실 나는 남들보다 덜 하고 더 갖고 싶었다. 남들이 자소서 3개만 써서 삼성을 갔다면 나는 2개만 쓰고 삼성을 가야만 했다. 남들처럼 저녁에 식단을 하고 운동을 1시간 힘들게 하지도 않으면서 살을 빼려고 했다.

남들이 나만큼 고생한다는 증거가 있어야 '그래 다들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했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 방향을 틀려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세상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이 정도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오픽은 회화 시험이지만 누군가는 문법에 집중했다가 애드리브를 못 쳐서 망칠 수도 있다. 그럼 다음에는 회화와 애드리브를 연습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그만하려고 한다. 내 감정, 늘 누군가가 인정해줘야 했다. 눈앞에 벌어진 일들은 내가 잘 몰라서 벌어지기도 했겠지만 나뿐 아니라 타이밍, 나보다 권력이 많은 타인 등으로 인해 벌어지기도 했다. 모두 내 탓이라고 자기 계발서는 이야기했다. 내가 불러왔다고. 그래서 내가 뭘 하든 그런 불행이 확정되어 있다면 나는 살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다시 잘하고 싶다. 그냥, 좀 미련해 보여도 살도 빼고 자소서도 다시 노력해서 시간이 걸려도 내년 중반으로 좋은 기업에서 오랫동안 다니고 싶다. 방황했던 모든 길을 내 소스로 삼을 수 있게 이젠 남들 노력 대비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하나씩 하고 싶다. 이제 나는 당분간 자기 계발서를 끊으려고 한다. 그리고 열망이 피어오를 체력이 생길때, 다시 읽고 그들과 달려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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