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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Apr 18. 2024

내 마음속의 cctv

혹시 cctv로 자신을 보고 있진 않으십니까?

혹시 cctv로 자신을 보고 있진 않으십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한 가지 고백할 게 있다. 내 인생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나의 약점. 바로 '남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 집착'하는 것이다. 엥? 안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나에겐 일상이었다는 게 첫 번째 문제. 그리고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단 것이 두 번째 문제이다.


뭐, 예시를 한번 들어보자.

당신이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고 치자. 괜찮은 대학교에 갔지만 조금 아쉽다, 나이도 아직 스무 살이고 재수도 많이 하는데... 반수 해서 훨씬 더 좋은 명! 문! 대! 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경우 나는 늘 명문대에 들어가서 행복한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늘


명문대에 들어가는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부러워하는 동기들,

멋있다고 동경하는 후배들,

그들이 보는 나를 생각했다.


내가 없었다. 그 모든 결정에서 내가 없었다. 내 상상임에도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이게 이상하다고 처음 느꼈던 때는 20대 초반이었다. 나의 우울증이 내 인생 중 극에 달했을 때.(라고 믿고 싶다. 그때보다 더 심한 상태가 오진 않았으면 좋겠다 나 자신아!) 내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아니, '비참해 보일 지를' 상상했다. 그 상상이 24시간 1분 1초 잠을 못 잘 정도로 뇌를 가동했는데 전부다 cctv처럼 나를 관찰하는 시선의 상상이었다. 내가 상상하는 남이 나를 보는 구도.


어?

.......

이상한데?


사실 그 이후로도 여기서 자유로워지진 않았다. 안 그래도 남들 눈 의식하기 좋아하는 한국 사회에서 모범생으로 살아온 여성은 남들 보기에 좋은 스펙과 조건을 갖추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첫 대기업 인턴에서 정규직 전환이 안 되었을 때. 내가 여기보다 좋은 곳을 가야만 나를 떨어트린 사람들, 나를 불쌍하게 여긴 사람들에게 면이 서는 거라고, 그들이 나를 떠올릴 때 "걔는 잘 됐지"라고 말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일부러 경쟁사 중 더 좋은 곳에 지원하거나 그곳에 입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잘 안 되었다. 대기업에 보란 듯이 들어갔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나의 능력부족과 운의 부족 모든 게 맞물려 억지만을 부릴 순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현실적인 타협을 해야만 했다. 


그때도 나를 괴롭히던 건 cctv로 보는 나를 향한 시선들이었다. "쟤 결국 저렇게밖에 안 되었네."/"나이만 먹어서 쯧쯧."


나는 아마 여기서 평생 자유로워지지 못하겠지. 하지만 이제 상상의 cctv는 덜 보려고 한다. 어차피 나는 평생 내 인생으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있어 보이는 선택이 아닌, 없어보이든 있어보이든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요 며칠 못 그리고 있다. 원래 그림이랑 같이 올라오는 매거진인데 참... 이렇게 꾸준한 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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