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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Apr 11. 2024

억울함은 그냥 갖고 할 일 하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억울함은 그냥 갖고 있어야 해.

난 없어 보이기 싫었다.

죽는 게 나았다.


우울증이나 여러 과거의 상처,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재앙이나 경제적 상황 등으로 인생을 사는 우리(죄송하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쓰는 글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라)는 종종 비참해지곤 한다. 아무도 우릴 비참하게 하지 않더라도 태생적으로 여유가 있고 구김살 없는 친구나, 인생에 별 힘든 일 없이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을 보면 말이다. 인생에 경험이 많을수록 좋다지만 오히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시간도 지체되고 겁이 많아지는 한편 상처나 경험이 적을수록 당당하고 단순하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안 그래도 일이 안 풀려서 짜증나 죽겠는데 나는 왜 쟤네 같지 않을까 하며 두 배 아니 이십 배로 어떤 일을 하는데 부팅이 걸렸다. 내 발목을 잡은 대부분의 것은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며 한탄하면서 눈앞을 회피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다시 초조한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천천히 하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멋진 이야기? 동기부여? 갑자기 감동적인 격려를 받아서? 아니다.


죽음으로 회피하고 싶었는데 죽음 또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되면 죽지 뭐.' 아니 죽는 게 안 되었다. 그냥 눈감고 로그아웃 하고 싶은데 그런 쉬운 마무리는 없었다. 그려 나는 죽는 것마저 누가 해줬으면 했다. 그럼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나를 위한 행동들을 아주 조금씩 하기로 했다.


이렇게 살기로 한 각오도 딱히 멋진 이유가 퍼특! 떠올라서는 아니고. 내가 죽으면 날 이렇게 몰아낸 새끼들은 별생각 없이 그렇게 살아가겠지만 그 새끼들보다 훨씬 세상에 가치 있고 수도 많은 나와 연결되어 버린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까 봐 여서였다. 그래 두 번째 맞다, 나는 죽을 때조차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안 하고 남들 눈치나 봤다.


그렇지만 살아있게 되었으니 된 거 아닌가? 물론 삶은 어찌 될 줄 모른다 갑자기 전쟁 일어나거나 죽을지도 모르지.



앞에서 나는 없어 보이기가 싫었다고 했다. 그런데 세상이 항상 꽃밭은 아니더라. 일어나면 안 될 일이 있다면 세상에 범죄자가 왜 있고 피해자가 왜 있으며 사람들은 왜 교통사고를 당하는가. 그저 그들은 그 자리에 서있었을 뿐이다. 내가 없어 보이면 안 될 이유가 없었다. 나는 퇴직금으로 받은 돈을 직전 직장 새끼들 때문에 심리상담과 병원으로 다 썼고(그래서 죽지 않았고) 그럼에도 과소비를 잘 못 고쳐서 알바를 하다못해 몇 년 만에 일시적으로 부모님께 지원을 조금 받기까지 한다. 국민취업제도에 일자리 훈련, 집단상담, 지원금을 위해서 접수도 하고 있다.


이렇게 없어 보여도 상관없지만, 진짜 빼앗겨서는 안 될 것도 있었다. 나는 내 마음의 주도권을 너무 자주 남에게 주었다. 상처를 받고 분노하거나 치유하거나 피하는 게 아니라 그 상처를 곱씹고 또 상대방이 날 함부로 대할 수 있게 했다. 이게 진짜 없어 보여서는 안 될 것이 없어 보이는 셈이다. 난 살이 많이 쪘고 오랜 기간 동안 다이어트에 실패해서 아직도 뚱뚱하다. 남들은 뚱뚱하다고 날 손가락질하더라도 나는 살을 빼야 하는 내 의무와 별개로 그 손가락을 맘속으로는 부러트려야만 했다.


그래서 어제 취준생의 브런치북도 시작했다. 인스타툰에서도 아무거나 할 거고 다시 하나씩 서류를 넣어서 일단 일자리와 직장을 가져야지. 뭐가 맞는지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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