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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Mar 28. 2024

당신의 옷은 잘 맞으십니까?

세상과 나의 합의점을 찾으러 가는 중 피곤해 디지겠다.

혹시...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옷.

잘 맞으십니까?

아니면 그럭저럭 버틸만 합니까?

예? 저요?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누구나 괴롭다. 정도만 조금 다를 뿐이다. 

누군가는 맞지 앉는 옷을 입어도 체형이 그 옷과 차이가 덜어서 그럭저럭 입어볼 만할 수 있다. 아니면 누군가는 하루 정도는 참을만해서 결혼식이나 회의 때 잠깐 그 옷을 입어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체형이든 피부 트러블이든 그 옷의 모양새나 옷감과 전혀 맞지 않아서 어찌어찌 수납은 되었는데 엄청나게 괴롭고 보는 사람마저도 부담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남들 눈에 걍 이렇게 보인다

이걸 나는 혼자서 ‘나답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결혼식에 흰색이 어울린다고 흰 풀세트를 입거나 트레이닝을 입고 갈 수는 없듯이 어느 정도 나다움과 합의된 부분에서 특정 상황과 기간에서는 입어줘야 한다.

허벅지가 조이면 불편한 사람이 결혼식과 회의 때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가는 것은 많은 이들의 반감을 사니까. 대신 통바지나 원피스를 입어서 나름의 구색을 잠깐 갖춰준다.

정장사진이 이것밖에 없다

이게 사회성이라고,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합의점은 내가 허벅지가 조이면 불편한 나를 잘 알기 때문에 합의 볼 수 있다.



이 브런치북은 어쩌면 한국에 맞지 않는 여성이 한국에 맞춰보려다가 지랄난 이야기들이다. 스무 살 때 첫 심리상담에서는 한국을 떠나는 게 어떻냐는 말을 들었으며 눈에 띄는 목소리나 말투 때문에 겁이 난 어머니에게 많은 구박을 당했다. 이 모든 게 자유롭고 종종 ‘뭘 꼬라봐’소리를 듣던 인상의 내가 만만한 취급을 당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그게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믿었다. 한국에서? 아니 사회에서. 이런 내가 어떻게든 사회에 구겨 넣어지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나를 알게 되었다. 이 상황이 이 몇 년간의 난리가 너무나도 20대 초반의 나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복되는 것인가 제엔장.


내 대학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스무 살, 제법 공부를 잘했던 나는 SKY 기계공학을 갈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고3 때 내신과 수능을 전부 말아먹고 만다.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세상은 이걸 멘탈이 흔들린 내 탓으로 돌렸다.) 그래도 운 좋게 제법 인기 많은 학교의 원하는 학과를 갔다가 반수를 실패하고 다시 홍대의 좁은 고시원에 왔다. 

그때 잠이 많던 나는 불면증과 우울증 불안장애를 전부 동반하였으며 정상적인 사고가 되질 않았다. 일으켜 세워준 건 동네의 작은 카페. 거기서 생각을 하고 병원과 상담을 알아보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놓았다.

사실 늘 이렇게 살아왔다.

기계공학과의 여학생은 으레 ‘공대 아름이’라 불리며 예쁘거나 괄괄해서 사람들과 친하거나 둘 중 하나를 강요받는다. 둘 다 아니었던 나는 술자리고 재미가 없었고 혼자 공부하는 게 좋았다. 그 둘 중 하나가 되어서 친구들이 많아지거나 공부를 잘해서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려고 연기를 위한 연기를 하다가 고장이 났다. 그래서 그냥, 보내줬다. 한 번에 되지는 않았다. 다만 혼자 잘 지내고 일주일에 한두 번만 친구를 만나도 괜찮은 나와, 어느 정도의 팀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하는 역량 사이에서 나만의 합의점을 찾았다.


학사경고를 받았던 나는 졸업프로젝트 1등으로 학과를 마무리했으며 그렇게 원했지만 없었던 친구들은 이제 제법 많았다. 본가보다 서울에 친구들이 훨씬 많아졌다. 


그러나 채용전환현 인턴 실패, 갑작스럽게 찐 살, 가세 기욺, 재수 없는 직장 걸림 등은 다시 나를 안으로 집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삶은 이렇게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내 통제 밖으로 파도가 밀려들었다. 


차라리 그 모든 과정에서 떨어질 줄 알아도 최선을 다하고, 피곤해도 서류를 더 많이 지원해 보고, 바로 효과는 없어도 식단과 운동을 꾸준히 해보고, 기죽지 말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의사를 표현하고, 인사팀이 팀 옮겨준다 할 때 넙죽 받고, 앞에서는 미안한 척하고 뒤에서 엿을 날렸다면. 그래도 결과가 똑같았다 해도 아마 내가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안 맞는 옷이어서 찢어지거나 벗는 결과는 같았겠지만, 그 옷에 안 들어가는 내 체형을 저주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요즘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상황이 거지 같으면 상태라도 좋게 유지. 이게 늘 나다운 방식이었다. 많이 지원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 선을 긋고, 억지로 있는 게 괴롭다면 상황 보고 버티거나 나가거나 하고, 자신 없는 면접이어도 준비는 철저하게 해 보고. 


대부분은 혹은 사회적으로는 꼼꼼히 작성해서 적게 지원하고, 무조건 참아야 하고, 돈이 적으니 알바든 어디든 무너져도 버티고, 자신 없는 면접이면 그 시간에 다른 곳 지원하고. 이 괴리 사이에서 조금씩 나에게 맞는 정도를 찾고 있다.


아마 나는 평생 겨우 이 정도를 찾다가 삶을 마치게 되겠지. 하지만 남의 정도에 끼워 맞추다가 요절하거나 괴로운 것보다는 남들보다 조금 덜 떨어져서 외로움을 택하려고 한다. 

살다 보면 종종 이렇게 남의 의견을 많이 듣기보다는 흔들리지 않게 고수하는 시기도 필요하다. 그 시기가 지금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눈앞의 일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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