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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May 16. 2024

실패해서 자유로워짐.

정신승리라 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이상하게 이 브런치북 글, 지각할 때마다 서촌에서 글을 쓰고 있다. 세이브 원고가 없는 내 인생과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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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머리를 엄청 굴리고 마음을 조급하게 먹고 온갖 난리 부르스를 치면서 악몽을 꾸다가, 힘을 그냥 뺐다. 뭐 별다른 깨달음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이렇게 걱정하고 괴로워한다고 뭐가 바뀌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헛방만 친 인생이래도 30년 가까이 살아가니 나름 이상한 고집은 부리지 않는다. 엣헴.


5년 취준생존기라는 브런치북을 쓰고 있어서 이 브런치북은 어떻게 구분지을지 머리가 아프다. 그게, 나는 5년이라는 사회적 방황을 하는 동안 너무나도 많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거지같이 안 풀리는 상황들이 없었다면 내가 얼마나 자기 파괴적으로 나와 타인과 세상을 혐오하며 살았을지 눈앞에 선하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냐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증오했던 아버지-그의 생각 방식을 빼다 닮은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는 저렇게 살면 자식도 괴롭지만(내 어린 시절은 사랑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아버지 덕에 매일이 서바이벌이었다. 내 우울의 근본.) 자기 자신이 정말 괴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실수도 남도, 자기 자신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남들 중 자신이 무조건 주인공, 1등이 되어야만 면이 살고 그래야만 살아가는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의 첫째 딸, 그런 집안의 장손(외가 친가 합해서 제일 첫 아이)인 내가 고스란히 그런 사람으로 큰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크지 않으려고 가출도 하고 모의고사 전날에 집안을 다 뒤집고 싸우고 친구들 집에서 전전하면서 외박하면서 시험을 치고, 수능을 치기 전 토를 하고 다시 수능을 쳐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갔다만,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릴 때 부모님께 틈을 허락받지 못했기에 당연했다고 해도 이제는 그 틈을 본인이 줘야만 했다. 그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지금 대학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해댔고, 복학 후에는 수석을 하려고 했고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레알 내 마음대로 된 거 하나도 없다. 나는 생각보다 뛰어나지도 않았고 독하지도 않았다. 항상 긴장되어서 살아가니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늘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모든 실패를 하자 나에게 허락된 범위가 넓어졌다. 무조건적인 좁은 틈만 보다가 세상이 억지로 나를 디립다 패서 그 틈을 망치로 깨부쉈다. 나는 그걸 몰랐다.

아마 남들이 말하는 실패, 최선을 다하지 않음 등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원하고 계산했던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면. 그 모든 것들을 획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뻔하다. 내가 기억하는 10년 전의 폭력적인 아버지랑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겠지. 외롭고 고독하고 하나라도 안 풀리면 자신을 파괴하고 남을 비웃고 남들이 나를 비웃을까 봐 1분 1초 벌벌 떠는 그런 삶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제법, 친구들이 많다. 예전의 나라면 분명히 모두가 힘들어했을게 뻔하다. 일도 안 풀리는데 커피 한잔하고 위로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게다가 좋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있다! (어째 그들이 잘난 것이 나의 자랑임.)


그리고 나름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 잘 못 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도 또래에 비해 잘 알고 있다. 나를 알아가는 게 인생의 유일한 미션이라면 나는 제법 빠르게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나의 모든 실패들은 결국 나에게 자유를 선사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 센터 강박, 뛰어나야 한다는 강박을 아주 천천히 무너뜨려준 나의 실패들을, 나는 원망할 수만은 없었다.(물론 그 순간에 만난 개 00들은 지나가다 만나면 팰 거다.)


나와 비슷하게 아버지도 최근(아마 아버지에게 주어진 실패는 잘난 줄 알았던 첫째 딸인 나의 방황과 실패인듯하다.) 많은 게 꺾이고 자기 나름대로 산다. 내 트라우마의 시작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지금은 가장 나를 포기하지 않는, 내가 쓰레기여도 좋으니 천천히 살아가주기를 바라는 사람임이 신기하긴 하다. 서로가 서로의 트라우마이자 짱친이 되었으니 그냥 셈 셈으로 쳐주기로 하자. 나 같은 자식 없다. 잘하세요 부모님(엄마 아빠 : 뭐여?)



내가 좋아하는, 살아가는 방식이 하나 있다. 오래된 것은 아니라 깔끔하게 전달이 잘 안 된다. 대충 이야기하자면... 모든 것은 내가 의미를 둔 만큼만 의미가 있다.


말하고 나니 이상하군. 그러니까 그렇다 그 머냐. 어떤 일은 보통 장단점이 있다. 내가 해석하는 만큼만 그 장단점이 적용이 된다. 스무 살 때부터 부단히 도 끌려다녔던 어린 시절 덕에 발생한 우울증, 불안장애 등으로 인해 상담과 병원, 복용하는 약이 끊긴 적이 없다. 그렇게 정신적인 활동(?)에서 나름 종횡무진한 내가 깨달은 바이니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당신의 00한 성격,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상황에 따라 잘 발현될지 독이 될지, 독이 된다고 당신이 받아들일지에 따라만 달려있다.


뭐라구우? 그게 어떻게 돼!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적 기준이란 게 있는데!

맞다. 그런데 소름 끼치는 사실이 있다. 사회적 기준이 아니라 결국 평생 나는 내 기준에서 눈앞의 사회와 상황을 해석하다가 땅에 묻힌다. 나는 평생 내 해석으로만 살아간다. 이 시기와 일들이 허무하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내가 나에게 내리는 판단일 뿐이다.


남들이 모두 내 적이거나 적어도 세상은 내 편이 아니라면. 나만은 내 편이 되어야겠다. 나도 외로운 것은 질색이기 때문이다.

이전 27화 나는 왜 내 편이 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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