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ul May 09. 2024

나는 왜 내 편이 되지 못할까.

남들은 다 내편을 들어주는데 나는 도저히 들 수가 없다.

(이야, 늦었다.)

안녕하십니까. 요즘 지각... 은 아니지만 계획한 시간보다 조금씩 느리게 글을 올리는 강철경(chul)이올시다. 최근 생각과 감정 등이 너무 매몰되어 있고 그게 실제로 해야 하는 일들이나 다음 행동을 결정짓는 데에 많은 딜레이를 주었다. 도저히 집 근처에서 자소서 쓰던 곳에서 글을 썼다가는 다시 늘 해던 글이 나올 것 같아서 도망치듯 경복궁 옆 서촌에 왔다. 그리고 예상과는 다른 카페에 들어와서 머리를 식히고 있다.


그래서 글을 다시 쓴다.

----


자존감이란 단어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만 굉장히 유행이 오래가고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자신감, 자존심은 채워지고 자존감은 비워지기 쉬운 환경인가 보다. 그런데 그 자존감마저도 수업이나 콘텐츠로 채워지는 방법들이 많아져서 오히려 공허해지곤 한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이 비난처럼 들릴 때도 많고 누군가에게 공격이 되기도 쉬웠다.


이 말을 왜 꺼내냐면, 내 삶 중 가장 큰 과제, 지금도 가장 안 되고 아마 앞으로도 제일 어려운 과제가 나름 자존감이기 때문이다. 음, 그러니까 나는 내 편이 되지 못한다. 내 편을 드는 방법을 아직도 모르겠다. 남들이 내 편을 들게 하기는 쉬웠다. 나를 불쌍히 여기거나, 가없이 여기거나, 내 말에 공감해 주거나, 설득당하거나. 그런데 정작 나는 내 편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세속적인 표현이지만) 어딘가에 입사 지원을 할 때도 나는 나를 설득시키지 못해서 제대로 된 어필을 단체에게 하기가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뭘 깨달은 줄 알았다가 다시 그 문제가 도돌이 되는 것을 보고 답답해하거나 의아해했다.

주변에 아예 사람이 없었던 5년 전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이 지금 내 주변에 많다. 그들은 내가 어떤 형태 거나 한심한 상태여도 내 편을 들어준다. 진심으로 내가 편안하길 바란다. 그런데 나는 나를 그렇게 두지 않는다. 남들에게 1000번의 괜찮고 좋다는 말을 들어봤자 나는 내가 안된다고, 너를 한심하다고 더 고생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내 사람들의 위로와 위안을 들을 때마다 어디 한 군데가 고장 난 느낌이 들었다. 그 말이 사실, 내게 못 와닿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내 편을 들어준다, 는 개념을 이해하려면 1. 남들의 말을 들은 수 2. 이를 인정해서 3. 그 말의 메시지로 내가 내 편을 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3이란 '내가 내 편들기'에서 막히기 때문에 딱히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 편이 낯설다.

이만큼의 월급에 이만큼의 회사에 내가 가야 하고, 정작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는 관심 없이 '일자리'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보니 늘 막혔다.


-"그래서 무엇을 하고 싶으신데요?" (실제 면접에서 들은 말)


저는 그냥 적당히 돈 벌고 싶습니다. 예전 직장이랑 비슷한 월급이면 되고 커리어상의 발전 같은 건 상관없습니다. 사무직이면 더 좋겠습니다.


-솔직히 말해볼까요?


전 직장들 전부 원치 않게 나와서 이제 사실 뭐 잘하는 지도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적당히 돈이 부족하지 않으면 그냥 널브러져서 살고 싶고 어른의 책임 따위는 다시 지고 싶지 않습니다. 이게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되었냐, 이 000들아.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고.


-아이고 진정하세요.


생각 정리를 하러 바람 쐬러 나와도 결국 이렇게 스스로를 저주하는 이야기로 끝나는데, 내 편이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 오늘 자소서 안 쓰고 빈둥거리면서 놀러 온 나 자신이나 덜 닦달해야겠다.


이전 26화 성실 외엔 답이 없다는 절망적인 희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