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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un 05. 2024

뭣 같은 일도 견딜 체력 있을 때 겪는 게 낫다.

그놈의 공백기동안 얻은 게 있다면요,

굳이 굳이 의미를 두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내 특기다. 정신승리.


그중 내 특기 중의 특기가 있다면, 버리는 시간을

'돌아보니 나쁘지 않은 시기였다.' 혹은 '이런 것을 배웠다.'라고 의미를 이끌어내는 활동이다.

오라, 달콤한 자괴감의 6월이여.

그중 한국인이 가장 뒷담 하기도 좋아하고 타인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신나게 비난하기 좋아하는 '퇴사를 반복한 취업준비기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계속 그 이야기했던 거 또 하면서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냐고? 이 기간에서 배우고 느낀 무언가,를 나눠보고자 한다.

남들이 허무하다고 비난하며 놀리기 좋아하는 그 시기에서 무엇을 얻었냔 말이냐!




5년, 대학 졸업 후 5년인가.


이 나이쯤 되면 몇년도 출생,졸업만 기억난다고.

이젠 직장이던 일을 얻어도 '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도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겠지. 인생은 기니까.'라는 베짱이 생겼다. 이 5년의 타의적 자의적 방황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어떤 모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어야 했던 나는 인성적으로도 스펙적으로도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모든 요소를 갖추기 위해 집착했다.  못 갖추면 차라리 죽으려고 했다.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지 참나.


하지만, 삶이 의외로 길다.

그러니 일광욕도 해줘야한다.

취준은 인생 전체에 걸쳐있다. 우린 평생 일하고 돈을 벌고 돈을 쓰고 공부하고 살다가 가지 않는가. 만약 누군가가 나처럼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고, 높은 결과를 얻고 싶었지만 그걸 실패했다면, 그래서 일어나기가 힘들다면,


시련은 차라리 첫 취준인 20대 초중반 때 겪는 게 낫다.

는 내 아주 개인적인 깨달음을 공유하고자 한다.

인생 뻑

나의 경우 기계공학 전공이지만 기획/마케팅으로 직무 변환을 했다. 4년 동안, 그것도 꽤 졸업장을 따는데 애를 쓰고 공부가 어렵기로 소문난 이 전공을 한 번에 버리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난 1분 만에 바꾸기로 하였는데, 내가 챌린저라서? 멘탈개쎄서? 아니다.


그게 그 정도로 큰 일인지 어려서 몰랐기 때문이다. 4년 동안, 인서울 4년제의 사립대.... 등록금이 1년간 거의 1천만 원이고 이걸 4,5년.. 최소 보호자들의 돈을 5천만 원을 까먹은 데다가 당시에 '취업 깡패'라 불렸던 전. 화. 기(전자/화학/기계) 중 하나인 이 전공의 경쟁력 따위.... 몰랐다. 돈을 벌어봤거나 나이가 들었다면 나는 이 전공을 살리는 방향을 고집했을게 뻔하다.


그러나.. 우린 의외로 본인에 대해서 알고 있다. 나는 전공 공부를 하면서도, 졸업 후 인턴을 하면서도, 이 전공이 너무나도 나에게 안 맞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죽하면 나름 전환율이 높았던 엔지니어 인턴에서도 전환이 안 되었는가. 뭐 그 순간에는 기분 진짜 0 같았고 지금 그때를 생각해도 0 같고 이름도 기억 안나는 동기들과 상사들이 원망스럽긴 하지만..


어렸기에 시도란 것의 무게가 훨씬 가벼웠다.


이는 직전 직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할 때도 느꼈다. 나와 같은 젊은 여자사원을 주로 괴롭히던 그 부서는 1년에 5명 정도가 나가는 곳이었다. 나도 1년 버티고 나갔다. 그런데 만약 내가 가정이 있고, 경력이 있는 상태였다면 그 지옥을 빠르게 탈출하려는 결심을 못 했을 것이다.


내가 봤을 때는 나를 정말 양아치처럼, 교양 없이 괴롭히던 직속 상사또한 그 괴롭힘과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였는데. 이를 가장 잘 느낀 점은 내가 퇴사할 때 '나는 여기가 끝인데 너는 더 좋은 곳을 갈 수 있고 젊다니 부럽다.'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그는 늦은 취업(자기 말로는 내 나이 때 대학에 들어갔다고 한다.), 여러 힘든 상황, --장이라는 경력과 최근에 태어난 둘째 아이 등으로 아마 이직 준비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안타깝다는 말은 전혀 아니고(알빠냐; 쓰레기새끼;) 만약 저 상황이었다면 나도 탈출 심지어 이직 성공도 전에 튀어나올 수 없었을 테니까.


나는 나이가 아직 알바나 계약직으로 시작해도 되었고, 생활고가 조금 있었지만 크게 어렵지 않게 나름 지원받고 알바하고 프리랜서 활동도 하며 취준을 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아직 이 나이대에 시련을 겪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나는 어린 사람들이 시련을 겪길 바라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1020은 아무 생각 없이 잘 살기를 바란다. 아무리 대가리꽃밭이니 엠지세데니 맑눈광이니 욕먹어도 어여쁘게 어리고 젊은 시절을 보내길 바란다.

소듕해. 그대들.

하지만, 만약 인생이 흔들릴 정도나 범죄의 피해 정도가 아니라면, 차라리 조금이라도 어릴 때 겪는 게 나아 보였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 친구의 배신, 사이비종교(에 잡힐뻔함), 20대 후반에 남들 결혼할 때 카페알바함, 다시 신입 취준하고 신입으로 들어감 등등은 열거하고 나면.. 세상에서 일어날만한 일 들 중에 가장 그 사이즈가 작지 않은가.


만약 30대 이후에 이 일을 겪었으면 나는 다시 시작하기 힘들었을게 뻔하다. 가진 것도 많았을 거고 자존심도 높아졌고, 그리고, 정신적 신체적 체력이 지금처럼 새로운 도전이니 일자리니 시작하기가 힘들었을 테니.


이게 누군가가 청춘이라면.

나에게 청춘은 뉴진스의 노래와는 다르게 아무래도 방황과 혐오와 이 악묾의 연속이었지만.

그나마 청춘이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브런치를 보는 그대들

음, 그런데 한 가지 확실히 하자면 지금 우리의 시간이 내 인생 중 가장 젊은 시간이다. 그러니까, 지금 시련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당신이 어느 시간대를 살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음... 한 10년 뒤에 비슷한 조같은 일을 겪는 것보단 지금이 나으실지도 모릅니다. 원래 모든 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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