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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Oct 14. 2019

서열말고 이름을 불러줘요

'한국, 이런 건 아쉽더라' 1 - 언니 동생 팀장 부장 말고요

해외살이를 통해 본, '한국, 이런 건 아쉽더라' 1

 나이는 그만 묻고,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어요.



인간관계를 맺는 첫 단추, 호칭 문화


1) 나이가 부여하는 호칭


3여년 전의 일이다. 자메이카에서 내 베프는 같은 컴파운드에 사는 스페인 친구 알리시아였다. 친구와 커피도 마시러 나가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베이킹도 하고 가끔 서로들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하고는 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한 가정이 주재원으로 근무를 하러와서 같은 컴파운드에 살게 됐다. 주재원의 와이프와도 베프가 되었는데, 그녀는 나보다 1살이 많아서 만난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게됐다. 그녀와 막 친해지려는 시기였다.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며 나에게 질문했다.


알리시아 몇 살이에요?
알리시아요? 저도 몰라요. 그런데 나이는 왜요?
베프라면서 나이도 몰라요?


언니는 나이가 정말 궁금했던 거다. 그게 바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맺는 첫 단추다. 나도 한국인이지만 어느덧 외국에 살면서 그런 방식이 많이 지워진 탓인지 알리시아를 만나면서도 '그녀는 과연 몇 살일까?' 정말 1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 이야기, 아빠의 성향으로 어릴 적 받은 교육 방식, 그래서 그녀가 가지게 된 삶의 습관 같은 것들, 그녀 언니의 이야기, 엄마의 건강 이야기, 조카 이야기, 이번에 여행 가서 일어난 일, 요즘 D(그녀의 아들)에 대한 고민들이 우리의 주 관심사이자 이야기 꽃의 주제였다. 온통 우리는 상대방의 모습 그 자체가 좋았고 그것을 존중했고 또 안부를 물었고 서로 케어하는 사이였다.


사뭇 다른 풍경. 한국에서의 낯선이와의 첫 만남에서 우리는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저는 ㅇㅇㅇ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ㅇㅇㅇ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ㅇㅇ 년생입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ㅇㅇ년생인데 그럼 그 쪽이 저보다 한 살이 어리네요.
아, 네. 그럼 제가 언니라고 부를게요.


이런 식으로 우리는 만나는 첫날 호칭을 정하는 편이다. 그리고 한 번 정해진 호칭은 살짝 오버해서 '천지가 개벽해도' 잘 바뀌지 않는다.




2) 위계의 조직문화가 부여하는 호칭


얼마전 출근을 했다. 그날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갔는데, 그 사무실에도 소위 '막내'가 있더라. 딱 봐도 사회 초년생인 그는 바짝 군기가 든 사람마냥 지시에 즉각 움직였다. '막내로서의 예의'가 몸에 박혀 있었다. 자리에 다함께 앉자 그가 수저통을 열고 수저를 놓느라 바빴다. 직접해도 되는 일을 누군가 챙겨주는 것이 웬지 불편했다. 나도 스스로 할 수 있는데. "ㅇㅇ씨, 본인 것만 챙기세요. 내 것은 내가 할게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Solomon's Throne, Restored', 1890 (출처: gettyimages.com)


높은 직급에서 더 이상 승진할 직급이 없어 떠난 선배들에 대한 호칭은 정말 더 웃프다. 차장으로 퇴사하면 차장님으로 불리고, 처장으로 퇴사하면 처장님으로 부른다. 前 처장님, 前 과장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ㅇㅇ씨는 정말 예의없다고 느껴지고, 다른 호칭은 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한 것이 아니면 좀 부르기가 머쓱해진다. 처장으로 퇴사해서 공사의 사장님으로 가게 됐다면 당연히 호칭은 나의 사장도 아니면서 사장님이 된다.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봐 주는 문화가 되면 좋겠어요


해외에서 살면서 좋았던 것은, 친구를 친구 그대로 봐주는 문화였다. 레이첼이면 그냥 레이첼이 다였다. 아이들 학교에 그 나라 문화부차관 아들이 같이 학교를 다니는 바람에 가끔 학교행사나 대사관 행사에서 보거나 하다못해 아이들의 생일파티에서 만나도 차관이라는 호칭은 쓰지 않는다. 그냥 이름을 부른다. 학부모들의 그룹채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차관님 혹은 차관사모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이름을 부른다. 그들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기 이전에 그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고, 또 아들 친구의 학부모이기 때문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 봐주는 그들의 문화가 좋았다.




위계의 조직문화 이제 가감히 떠나보내자.(고 말하고 우리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로 읽는다.)


지인이 독일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 회사는 관련 분야의 원천기술이 차고도 넘친다고 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 원천기술이 정말 없단다. 외국에서 한국의 이런 실상을 마주하고 있으면 씁쓸하고 곧 슬퍼진다고 한다. 위계질서 신경쓰고 호칭 신경쓰고 이러는데 에너지 빼지 말고 이제 제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싶어진다.


해외살이를 통해 본, '한국, 이건 좀 그렇더라' 1은 바로 우리의 호칭 문화다. 사회적 지위와 나이와 상관없이 늘 변하지 않는 호칭, 고유한 나만의 이름! 우리나라도 그 이름을 불러주는 문화로 바뀌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발행하려는데, 해외살이를 통해 본, '한국 이래서 좋더라' 8 에 지인이 댓글을 달았

. 이 내용과 상통하는 내용이 있어 캡쳐해서 올다.



무엇인가를 하는 것, 무엇을 먹고 입는 것에 집중하는 한국. 반면에, 해외에 살다보면 비교하는 것도 없어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게 되는 것에 집중하게 다. 나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그냥 그 사람 자체로 말이. 조금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는 우리가 된다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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