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이야기
남 앞에 죽도록 서기 싫은데,
피치 못하게 남 앞에 서야 할 때 번번히 실패를 했습니다.
의지 부족, 연습 부족, 능력 부족.
그런데 저는 참 소심한 결론을 냈습니다.
천부적인 부끄럼쟁이 기질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으로.
그리고 그 날이 왔어요.
날 쏙 빼 닮은 딸아이가 처음으로 무대에 서는 날, 바로 유치원 학예회 날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부끄러워하는 내 아이를 상상하며 미리 감정을 다독이기까지 했어요.
아이가 울면 어쩌나, 달려나갈 동선까지 미리 짜두었지요.
하지만 커튼이 열리고, 예상과는 달리 맨 앞줄 정 중앙에 내 아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도 얼굴 붉히지 않고, 큰 목소리를 내며 동작 하나하나를 즐기고 있었어요.
저는 동영상 촬영을 멈췄습니다. 핸드폰에 담을 게 아니었어요.
그 장면을 온전히 제 눈에, 제 마음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 동안 어린 시절의 날 빗대어 못할 거라고 걱정했던 우려의 마음을 지우는 지우개로 쓰려고요.
혼자서 짬짬이 연습을 하고 있었던 아이를 보고서도 믿지 못했던
엄마의 나약함을 혼내주는 꿀밤으로 쓰려고요.
좋아하면 할 수 있다는 것, 연습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50개월의 작은 내 아이가 저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