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는 것에 대한 무감각을 멈추어야 했다
누구보다 자신감이 충만했고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는 나였다
언제부터였을까
같은 스타트 선 위에서 출발을 기다리면서도
가슴이 뛰지 않았고
되려 가슴이 내려앉을 만큼 무서웠다
열심히 달리는 그들 사이에서 넘어지지만 않으려고
딱 그만큼만 하는 내가 있었고
이번에도 나는 단연 순위권에는 들지 못할 거라 미리 생각하고
뛰었다
부푼 마음으로 미끼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텅 빈 마음으로 빈 낚싯대나 다름없는 것을 보낸다
하나둘씩 올라오는 물고기들은 더 이상 부럽지 않았고
감감무소식인 내 낚싯대를 다시 들어 올려 그 자리 그대로인
미끼의 모습에 아무렇지 않은 내가 있었다
속상해하며 왜 그럴까 고민하던 시간을 지나
아쉬움 조차 사라지기 시작하는 시간까지 어느새 내가 달려왔다
아침의 햇빛이 아침의 북적임이 아침의 분주함이 싫어지기 시작했고
밤의 달빛이 밤의 고요함이 밤의 한적함이 나를 숨 쉴 수 있게 했다
이유 없는 서러움은 그 고요한 밤마다 찾아와 아주 작게 남아있던
내 자존심을 후비고 후벼 파 목구멍을 따끔따끔하게 만들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니 소리를 내며 소통하는 것에 의미를 잃어갔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내 미래에 대해 내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소개하는 것에
볼륨을 낮추어 힘을 잃어갔고 더 이상 그 얘기는 소리 내어 밖으로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쉴 자격은 결코 없다고 생각해 하루하루 소리 없이 할 일을 하며 보내었지만
고작 쉼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 삶이 필요했기에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뛸 의지도 없는 트랙 위에 서 있는 것
움직임도 없는 낚싯대에 아쉬움 조차 잊고 있는 것
사는 것 같지 않은 어딘지도 모를 이 곳에 덩그러니 와 있는 나를 보고
이제까지의 시간이 아니라 조금 다른 시간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큰 가방을 골라 나조차 낯설던 나를 꾸역꾸역 눌러 담고
여기서 가장 먼 곳에서 헤어질 생각이다
뿔뿔이 흩어진 나를 찾아 다시 담아와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가장 사랑하던 나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있는 여행이 아니라
내가 직접 떠나기로 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찾아 떠나는 일, 나를 찾는 일
그 일이 이루어졌다면
뜨거운 트랙 위를 신나게 달리는 일이
올라오지 않는 낚싯대에 아쉬움 가득 더 가까이 몰입하는 일이
다시 내게 찾아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