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16일 차, 빈

빈 분리파와 하루를 보낸 빈입니다.

by 현준

어제 무리하게 돌아다닌 여파로 몸이 말이 아닙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12시간을 넘게 걷거나 서있었으니 몸이 비명을 지를 만도 합니다. 어깨 눌린 곳이 아프고 발바닥부터 허벅지 종아리까지 온 다리가 쑤십니다. 게다가 자면서 이불을 뻥 차버렸는지 이불은 바닥에 구르고 있고 저는 자는 내내 추위에 시달렸습니다. 평소 습관대로 7시쯤에 눈이 뜨였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닙니다. 로비로 내려가 아침을 먹고 조금 더 자기로 합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늦장을 부립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벌써 점심을 먹을 시간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너무 강합니다. 강한 햇살에 눈을 제대로 뜨기도 쉽지 않습니다. 굳이 이런 날씨에 돌아다녀야 할까 싶지만 링슈트라쎄에 볼 것들이 너무 많이 몰린 까닭에 어제 못 보고 지나친 곳들이 많습니다. 얼굴을 찌푸리며 갈 길을 모색하던 저는 어제 못 가본 프라터 놀이공원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빈의 상징인 대관람차와 함께 스릴있는 놀이기구 몇 개를 타는 게 목적입니다. 유럽에 온 이후로 활동적인 액티비티를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몸이 좀 쑤시던 참입니다. 그렇게 기대를 품고 프라터에 도착하지만 겨우 사진 몇 장만 찍고 바로 회군합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걷는 것만으로 녹초가 되기 때문에 도저히 놀이기구를 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해가 지면 다시 타러 오든지 말든지 하도록 합니다.


20190618_130243.jpg 프라터의 대관람차입니다. 생각해보니 저 혼자 탈 이유가 하나도 없는 놀이기구입니다.

발길을 돌려 정한 다음 목적지로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봅니다. 벨베데레 궁전은 링슈트라쎄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빈을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땡볕 더위를 뚫고 몇 십분 정도를 걸어가니 넓고 깔끔하게 정리된 정원과 함께 벨베데레 궁전이 보입니다. 벨베데레 궁전은 상궁과 하궁으로 나뉘며 근처에 현대미술관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상궁 입장권만 구매합니다. 시간도 많고 더 갈 곳도 없지만 하궁과 현대미술관까지 관람하는 콤보 입장료가 26 유로로 부담이 큽니다. 상궁만 입장하는 티켓도 16 유로에 오디오 가이드까지 5 유로를 따로 내야 하므로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비싼 값을 치르는 겁니다. (오디오 가이드는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으면서도 한국어 가이드가 눈에 보이길래 신청하기로 합니다.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한국어 가이드를 그냥 지나치기엔 조금 아깝습니다.)

20190618_134337.jpg 벨베데레 입구에서 상궁을 바라본 풍경
20190618_161428.jpg 벨베데레 하궁에서 상궁을 바라본 풍경


오디오 가이드에서 설명하는 벨베데레 궁전의 간단한 역사와 함께 벨베데레 궁전을 자세히 구경해 봅니다. 벨베데레 궁전은 합스부르크의 전쟁 영웅 오이겐 공이 지은 궁전으로 특히 대리석 홀에서 보이는 정원과 빈 도시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현재는 궁전 건물을 미술 전시품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미술에 대한 별 다른 조예는 없지만 오디오 가이드를 따라 하나하나 빈의 미술사를 따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특히 시기별로 유명한 작품들의 실제로 보는데 캔버스에서 느껴지는 인상에 압도당하는 느낌입니다. 특히 빈 분리학파의 표현주의적 작품들은 사람들의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힘이 있습니다.

20190618_145012.jpg 빈 분리파를 이끌었던, 그 유명한 클림트의 키스입니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20190618_153334.jpg 에곤 실레의 초상화입니다. 표정과 배경에서 인물의 학술적 윈숙함과 여유로움, 호기심 등이 느껴집니다.
20190618_150140.jpg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자화상입니다. 불안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은 슬픔에 실성하기 일보직전인 마냥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벨베데레 상궁 관람을 마치니 어느새 세 시간이 흘러 있습니다.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그림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벨베데레 궁전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첫 날 봐 둔 k-pop fandom이라는 이름의 카페에 잠시 들릅니다. 매니저 분이 한국 분으로 제가 한국인인걸 알아보셨는지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인스타그램에서 최근에 유행하는 가게라면서 어렵게 시작한 가게니 홍보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십니다. 저는 컵라면을 사는 게 솔직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간단히 구경만 하고 나옵니다만, 아무래도 컵라면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4유로를 불렀을 때 그냥 나오는 게 좋을 뻔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아는 라면 맛이기는 한데 다음에는 이러지 않을 겁니다.

20190618_172746.jpg 컵라면 카페라는 컨셉도 신기하지만, 카페라는 이유로 컵라면 하나가 4유로라는 건 좀 심한게 아닐까요?


호스텔 로비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으니 '한국 사람이세요?'하고 물어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오늘 빈에 도착하셨다며 빈에 가볼 만한 곳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십니다. 간단하게 제가 가본 곳을 알려드리면서 서로 자기소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반년 간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여행을 마무리하는 중이라고 하십니다. 살짝 지쳐 보이는 인상과 함께 이제 여행은 질리고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하시는 걸 보면서, 석 달 뒤에 여행을 마칠 때쯤의 저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봅니다. 여행을 떠나던 날부터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었던 것이 떠오르지만, 살며시 덮어두는 빈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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