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여행이 되도록

여행을 재정의하다

by 읽고 쓰는 삶

여행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좋은 것인가? 꼭 가야 하나? 누구나 좋아하는 것인가? 나도 좋아해야 하나? 그래서 나도 반드시 해야 하나? 여행을 떠난다는 사람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와아~ 좋겠다~ 부럽다~”라며 자동반사적인 반응을 보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솔직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행을 별로 떠나고 싶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건 마치 친구가 더 넓고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와~ 좋겠다~ 부럽다 얘~”라며 으레 그렇듯 부러움의 반응을 친구에게 보여주는 것(실은 별로 부럽지 않지만 사회생활의 일환으로써 오로지 친구의 어깨가 으쓱해지도록 하려는 의도를 지니고)과 비슷하게 느껴졌고, 예전에는 아무 의미 없이 넘어가곤 했던 이러한 나의 리액션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TV를 틀어도 여행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책을 읽어도 여행 이야기가 넘쳐난다. 단톡방에서도 여행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젊었을 때 여행을 하며 살지 못한 우리 엄마도 늘 여행에 대한 갈망과 환상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늘 떠날 채비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렇다.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예전에 소개팅에 나갔을 때가 떠오른다. 카톡 프로필에 여행 사진이 가득했던 소개팅남에게 “여행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한 마디 던졌다가 돌아온 대답. “여행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요?” (네. 여기 있는데요. ^^;;)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하고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척하며 그 자리를 견뎠던 기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인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되고 싶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대입 준비로 바빴고, 대학 시절에는 취업 준비로 바빴으며, 취업 후에는 ‘돈 모아 여행 떠나기’가 다음의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 모두 그렇게 했기에 아무런 의심도 불만도 없이 나는 여행은 그저 좋은 것이라 굳게 믿으며 열망 없는 여행을 애써 떠났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세계 여행을 간다’는 그 사실 자체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들에 지나치게 의식했던 것 같다.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공부하여 실력을 키우는 과정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단지 ‘유명한 대학교에 합격한다’는 목표에만 매달리며 공부하는 학생처럼, 나의 여행은 그랬다. 여행의 내용물은 빈약하고 목적이 없었으며 여행의 결과물로 남은 것은 화려하게 보이는 사진 몇 장. 친구들과 나누는 “우리 그때 참 젊었고 자유롭고 좋았는데~”와 같은 대화 정도? 해외여행을 다녀왔을 때 사람들이 “여행 어땠어요?”라고 물으면... 글쎄.. 대답을 잘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을 왜 하는지 그 목적도 방향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능동적으로 여행의 과정에 집중할 수 없었고, 주체적으로 나만의 여행 스토리를 써나갈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유럽 여행을 가야겠다는 목표로 친구와 영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여행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그 시절 기껏해야 세운 목표는 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로 넘어가서 파리 에펠탑 앞에서 인증샷 찍기 정도. 뻔한 배경에서 뻔한 포즈로 찍는 뻔한 사진 한 장. 그것을 위해 내가 프랑스까지 날아갔던가?


대만에 갔을 때는, 같이 간 친구가 인생샷을 남기고 싶어 해서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난다. 어딜 가나 인증샷 인증샷 인증샷. 더군다나 내가 사진을 잘 못 찍어서 계속 혼났던 기억이 난다. 왜 본인은 내 사진을 예쁘게 잘 찍어주는데 나는 그렇게 못하냐고. 얼굴은 작게 키는 크고 늘씬하게 나오게 찍는 방법에 대해 강의를 듣고 왔다. 지금은 들여다보지도 않는 그 사진을 위해 그러한 수고를 들였다니...!


친구들과 단체로 태국 여행을 갔을 때는 태국 대표 음식들을 먹고 먹고 또 먹고 마사지를 받고 쇼핑하고 좋은 호텔에서 잠을 잤던 기억 정도가 남아 있다. 이 여행에서도 컨셉 사진을 찍어야 해서 컨셉에 어울리는 예쁜 옷과 소품들로 트렁크를 가득 채워 매일 옷 갈아입는 것이 주된 일이었던 것 같고, 단체로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유난히 더 낭비스럽고 사치스러웠던 여행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대망의 신혼여행. 남들은 다 가고 싶어 하는(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다.) 신혼여행. 나는 신혼여행 가기가 정말 너무너무 귀찮았다. 그냥 집에서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쉬고 싶었다. 결혼식 준비로도 정신이 없었는데(사실 결혼식도 정말 너무너무 하기 싫었다. 결혼은 너무너무 하고 싶었지만 결혼식 자체는 너무너무 싫었다는... 드레스 입기도 왜 이렇게 싫었는지..) 남편도 여행에 별 감흥이 없는 사람이라서 우리는 여행지 정하는 것부터가 그냥 일 그 자체였다. 결국 정해진 여행지는 남들이 좋다 좋다 하는 프랑스 니스. 이번 기회에 다녀오지 않으면 유럽 여행을 언제 다시 해보나 하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프랑스로 날아갔었다. 우리 둘은 모두 여행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라서(정말로 둘 다 그렇게 느끼고 생각한다.) 방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저 니스의 해변가를 걷고 상점가를 구경하고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심지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이러한 행위들에도 어떤 확신과 당위성을 찾지 못하고 뭔가 계속 허전해하고 있었다. 여행하는 내내 “이렇게 여행하는 게 맞나?” “여행은 어떻게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여행을 재미있게 느끼지 않지?”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며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남편은 언어 공부를 좋아해서 어렸을 적 공부했던 프랑스어 책과 사전을 가져가 간판을 보며 살아있는 공부(남편의 표현에 따르면)를 하며 자기 나름의 여행의 즐거움을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사진도 많이 안 찍었고, 말 그대로 ‘여행은 뭐지?’라는 화두를 신혼여행 내내 지니고 다녔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행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나도 과연 남들처럼 여행을 하고 싶은 건지.


다행스럽게 나만큼이나 여행이라는 것에 큰 의미와 가치를 두지 않는 남편을 만난 덕분에, 여행을 하지 않아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덕분에, 나도 이제 당당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남들처럼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워도 됨을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동안 아주 큰 오해를 해왔음을 깨달았다. 남들처럼 여행을 떠나 행복한 가족사진을 찍어 올려야 비로소 나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완성될 것이라는 대단한 착각을. 여행을 가서 견문을 넓히고 경험을 많이 해야 글을 쓸 수 있고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편견도 지니고 있었다. 여행이라는 것에 어떤 절대적인 선의 가치가 있어서 그것을 따라야 할 것만 같은,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한데 알 수 없겠는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다들 좋아하니까 당연히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나도 좋아해야 한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며 좋아하는 척 연기해 온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단순하게 살기로 했고 더 이상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애써 추구하지 않기로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남들의 여행 사진과 여행 이야기에 속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고 취향이며 그들의 선택이다. 나는 나의 삶이 있고 나의 취향이 있으며 나의 선택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만의 취향을 계발하고 나의 선호에 몰두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번 추석에 동서네를 만났다. 여행을 좋아하는 동서네 부부는 다낭으로 여행을 간다며 자랑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중에 우리 아기가 좀 더 크면 형제들 가족 다 같이 해외에 여행 가자고. 본인들이 추진하겠다고. 뿌듯하게 다소 우쭐해하며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의도는 좋았으나... 그들의 언어에 미묘하게 녹아있는 것 같은 이런 사고. ‘여행은 정말 좋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에게도 좋은 일이며 너희도 분명 좋아할 것이다. 너희도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일을 하고 있으며,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불가피하게 우리만 여행을 가지만 나중에 가족들에게도 이 기쁨을 나누어 줄 기회를 마련할 것이므로 부디 지금 이 순간 노여워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듯한 그런 우월의식적 사고.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순간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졌던 것 같다.


여행은 왜 가는 걸까? 여행의 의미는 뭐지? 여행 가서 뭐 하지? 여행 갔다 오면 뭐가 달라지지? 여행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뭐지? 여행 후에 나에게 남은 것은? 내가 얻은 것은? 세계는 넓다는 인식? 함께 여행한 사람들과의 추억? 자유롭다는 감각?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 넓어진 견문?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경험하는 것? 천편일률적인 여행의 모습을 벗어나 나만의 여행의 의미와 방법을 찾아보려고 애써봐도 결국... 나에게는 여행에 대한 큰 갈망이 없음을, 여행에 대한 환상도 이제 나에게는 무용함을, 세상에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음을, 그게 바로 나임을, 이러한 것들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행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이 만들어내는 여행이라는 환상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깨뜨려보기로 한다. 이러한 사회적 집단 현상에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동참하지 않기로 한다. 나만의 여행의 목적과 의미와 방향을 찾을 때까지.


나는 원래 여행을 좋아하지 않지만 요즘은 남들이 다 하니까 더 재미없어 보이고 더 지루해 보이고 특별하지 않아 보인다. (마치 지하철에서 모든 사람들이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핸드폰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처럼. 정말 그렇다. 모두가 핸드폰을 보고 있는 광경을 보면 무섭게 소름이 끼치면서 핸드폰이 싫어지고 던져버리고 싶어진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나의 괜한 자격지심이 아닌가도 의심해 보기도 했지만 정말 나는 여행이 별로다... 아무리 좋아하려고 해봐도 아직까지는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스(나의 게으름과 집순이 성향이 한몫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남편과도 매일 말하지만 ‘일상을 여행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매일 매 순간 여행하듯 살고 싶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정말 공감이 많이 되는 말이다. 나는 매일 독서를 하면서 매일 여행한다. 실제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그렇게 짐을 바리바리 싸고 세계를 향해 무거운 몸을 이끌며 여행이라는 우상을 큰맘 먹고 쫓던 그 시절보다 지금 집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이런 나날들에서 나는 훨씬 더 큰 자유로움과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때 배운 것보다 지금 하는 독서 여행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일 여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매일 책을 읽으며 여행을 할 것이다. 삶과 일상이 곧 여행임을, 지금 여기 내가 숨을 쉬고 있고 감각하고 있는 이 시공간이 나를 위한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여행지임을 매 순간 자각하며 내가 딛고 있는 땅에 발을 굳게 딛고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여기가 아닌 곳을 바라보며 ‘떠남’을 지향하며 ‘현실도피’라는 말을 위안 삼으며 살아가는 그런 삶을 지양하기로 한다. 멀리멀리 떠나려고만 하는 보기에만 좋은 단발성의 여행 말고, 지금 여기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내실 있는 정신의 여행을 권한다. 통념이 가리키는 방향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방향대로 여행하기를 바란다.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을 해나가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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