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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삶 Mar 03. 2024

옷보다 사람

옷을 위한 삶을 산 적이 있었다. 옷을 입기 위해 있는 나의 몸. 패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의 하루. 옷장에 가득 찬 옷들과 방 안 가득한 패션 아이템들. 몸은 하나인데 옷도 가방도 액세서리도 신발도 수십 가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옷 쇼핑은 아주 당연한 매달의 루틴이 되었었다. 옷 욕심이 많아서 사고 싶은 옷도 양말도 신발도 고민하지 않고 색깔별로 모두 구입. 몸은 하나인데 입을 옷이 너무 많아서, 산 옷은 또 모두 적어도 한 번은 입어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코디에 열을 올리며 매일 다른 옷을 입고 출근을 했다. 직장에 도착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을 가방과 신발을 매일 같이 그날 입은 옷에 맞추어 바꾸어 착용했다. 액세서리와 시계도 매일 바꾸어 끼고 심지어 지갑도 매일 바꾸어 사용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 싶을 정도였다. 자기 전에 다음 날 입을 옷과 패션 아이템들을 준비해 놓고 다음 날 일어나서는 패션쇼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준비된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며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정확히는 나의 몸과 내가 걸친 옷과 패션 아이템들을 보면서 나의 패션 센스를 평가하고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과 착각에 철저하게 빠져서 살던 때였다. 나의 외모로 나라는 사람이 평가되고 나의 가치가 결정될 것이라는 엄청난 오류적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고 바라보는 만큼 내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날씬하고 예쁜 사람들, 옷맵시가 좋고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인형 같은 비현실적인 외모와 몸매를 가진 아이돌들을 보며 동경하고 또 닮아가려고 무진장 애를 쓰던 어리석기 그지없었던 나날들이었다. 아이돌처럼 뼈의 굴곡이 드러날 것 같은 마른 몸을 가지기 위해서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고, 퇴근 후 헬스장으로 출근하여 헬스장이 문을 닫는 12시 마감 시간까지 운동을 하고 하고 또 했다. 집에 와서는 인바디를 측정하고 잠시라도 쉬지 못하고 또 실내 자전거를 타고 스쿼트를 타면서 몸에 있는 지방과 살을 다 빼버려야지 하는 정말 웃기고도 공포스러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나날들이었다. 수시로 온라인 쇼핑몰을 들여다보며 예쁜 옷들을 사들이고 연예인들과 쇼핑몰 모델들의 외모와 패션을 보며 그들의 삶을 이상화하고 부단히도 닮아가려고 노력했다. 물론 힘겨웠다. 힘들었는데 왠지 모르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소개팅을 할 때에도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자신이 없었고, 모든 것이 다 나의 외모 때문에 내가 마르지 않아서 날씬하지 않아서 잘 안 되는 것이라고 자기비하를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아련한 그 시절을 돌아보니 참 치열하게도 나를 망가뜨리려 애쓰던 시절이었다.


이런 생활이 부자연스럽고 버겁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미니멀리즘 열풍이 불기 시작하던 때였다.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을 읽기 시작하고, 단순하게 삶을 정리하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왔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먹고 싶은 음식도 배불리 못 먹고 배고픔과 싸우는 생활이 지속되었고, 막상 내가 원하고 원했던 48kg이라는 체중을 달성했을 때에도 그리 기쁘지 않았다. 매일 작은 치수의 옷을 사고 가지고 있던 옷을 줄이는 일에서 애써 기쁨과 만족감을 찾아보려 했으나 그리 지속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입고 싶었던 옷을 입는 기쁨도 한순간이고, 오히려 나라는 존재 자체는 소외되고 소외되어 기가 허하고 마음도 정신도 무척이나 가난하고 초라했던 것 같다. 내가 바랐던 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허무함이 밀려왔고, 그동안 추구했던 모든 것들이 모두 허상이었으며 나를 파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퍼뜩 들었고, 나를 망가뜨리는 주체가 나였던 만큼 나를 다시 살리는 이도 나여야 하고 나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일어나보기로 했다. 방 안을 둘러보는데 변비에 걸린 것처럼 꽉 막힌 그 답답함에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것부터 바로잡자. 그때부터 비우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만의 스타일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그저 이 세상 모든 스타일의 옷을 다 소화하고 말겠다는 그 집념으로 사 모은 옷들이었다. 온갖 스타일의 옷과 패션 아이템들이 가득했다는 말이다. 이걸 다 어쩐담. 한숨부터 나왔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나라는 한 사람이 화가도 되고 싶고 가수도 되고 싶고 모델도 되고 싶고 교사도 되고 싶고 학자도 되고 싶고... 그 모든 직업을 하루마다 바꾸며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옷도 나의 정체성과 스타일을 담아 신중하게 선택을 해나가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먼저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의 모습은 연예인과 모델들의 화려한 모습이었을까? 아닌데... 그렇다면 이 욕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미디어...? 내가 드라마랑 인터넷 연예인 기사를 너무 많이 봤어.. 너무 관심을 주었지. 쯧쯧. 한심하다. 됐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 무엇을 하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며 살고 싶어? 무엇이 나에게 진짜 만족감을 주지? 어쩌다 보니 나와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현실적으로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 꿈도 많고 욕심도 많은 이상주의자인 내가 어떤 하나의 삶과 정체성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복잡하게 어질러져 있던 나의 옷장과 그 모습의 대칭으로서 존재하던 나의 지저분한 내면을 정리하고 단순하고 가볍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기 때문에 과감하게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그 나머지를 포기하기로 했다. 이렇게 한동안은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동안 입시와 취업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달리기만 하느라 잊어버렸던 내 안에 욕망과 꿈을 되찾고 가치관을 점검하고 철학을 다시 세우는 일에 몰두했다. 내가 세운 확고한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잡힌 내가 되고 싶었다. 진심으로. 내가 그동안 사회와 타인에 의해 이끌려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그리고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나도 힘들었으니까. 무지한 탓에 어리석었던 탓에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이 그렇게 살아온 것이었으니까.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으니 됐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나에게 있는 옷들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나의 정체성과 취향에 맞는 옷들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정리할 계획을 세웠다. 내가 가진 옷들의 취향이 다양했던 것만큼 다양한 취향의 친구들을 사귀어왔기에 각각의 옷이 어울리는 친구들에게 옷을 나눠줄 수 있었다. 기부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주고, 몇몇 새 제품은 팔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옷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하나씩 정리를 시작해나갔다. 옷과 물건과 일상을 정리해나가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나의 내면이었다. 나의 내면에 대한 존중. 나의 욕구와 욕망을 존중해주는 일.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바라봐주는 것. 사회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안의 생각과 느낌과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 무언가로 인해 오염된 나의 의식과 무의식들을 깨끗하게 정화하고 내가 원하는 생각과 신념들로 다시 채워나가는 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일. 오직 ‘나’를 믿고 살아가는 일. 보이지 않는 내면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고 싶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들의 진심과 삶의 태도를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사람들이 나를 내가 걸친 옷이나 물건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그 자체로 바라봐주고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나를 그렇게 대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화려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동경하는 마음도 아주 큰 낭비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도 수치스럽게 느껴졌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살이 쪘나 안 쪘나 살을 어떻게 뺄까 머릿결은 피부는 어떻게 좋게 만들지 어떤 옷을 입을까 어떤 옷을 살까 등등 외모와 패션에 관한 고민을 하는 모든 순간이 쓸데없이 나의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렇게 원치 않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들을 비우고 나자, 새로운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더 의미를 주고 가치 있는 것들이. 책을 읽고 생각이란 것을 해보고 글을 쓰는 일.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새롭고 다채로운 생각과 경험 이야기들을 듣고 여러 삶의 태도를 배우는 일. 삶의 본질과 핵심에 좀 더 깊게 파고드는 일. 나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일. 내가 죽기 전에 타인과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일. 겉으로 보이는 몸매가 아니라 나의 건강과 체력을 위해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운동하고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연구하는 일. 나는 정말 할 일이 많았던 것이었다. 옷과 외모로 향한 관심을 내 안의 사유로 돌리자 정말 많은 것이 변했던 것이다.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은 옷을 더 많이 사고 옷장이 더 채워질수록 화려하게 나를 치장하면 치장할수록 자존감은 더 낮아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단순하게 비우고 정리하고 예전의 내가 바라본다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빈곤스럽게 느껴지는 생활 속에서 나는 내면이 가득 차 있어 풍요로운 마음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그 수많았던 나의 보물(이라고 여겼던)들을 다 치워버리고 난 자리에 나는 지금 정신적 삶을 위한 재료들로 채우고 있다. 나만의 인생철학을 세워나가는 일은 꽤 오랜 시간 걸리는 일이다. 어쩌면 죽기 전까지 끝마치지 못할 만큼. 옷보다 사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깨달은 첫 번째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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