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요리는 생명력을 키워나가는 일

by 읽고 쓰는 삶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신기하고 놀랍다는 듯 신나고 들뜬, 반가움이 묻어있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는 그런 날. 며칠 전이 그런 날이었다. 별 큰 일은 아니었는데, 그냥 갑자기 뭔가 신기하고 초월적인 기분이 들면서 ‘이건 운명이다. 신의 계시 같은 건가. 여기엔 분명 신의 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신은 어떤 메시지를 나에게 보내주신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는. 그런 날이었다. 그 날은.


눈을 떠보니 내 앞에 무언가가 가득 담긴 커다란 비닐봉지 두 개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하나는 할머니로부터 온 하얀 봉지였고 다른 하나는 시어머니로부터 온 검은 봉지였다. 색깔만 다르고 크기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여러모로 비슷비슷하게 생긴 두 봉지들. 이 형제자매처럼 닮아 보이는 봉지들이 같은 날에 내 눈앞에 찾아온 것이 참 우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 안에 든 것들이, 서로 다른 이들로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거쳐 나에게 온 그것들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그것이라는 사실에 나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호들갑인가 싶겠지만, 단조로운 일상에 찾아오는 우연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나에게 이건,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나도 기묘하고 재미있는, 그런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렇게 어느 날 운명처럼 상추 두 무리가 우리 집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운명처럼, 상추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해피엔딩의 결말이 보장된 낭만적 러브스토리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되었다. 바야흐로 상추의 시대가 열렸고, 상추와의 러브스토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어머니가 소고기와 함께 먹으라며 시장에 들러 사다 주신, 그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귀여운 모습의 상추들. 할머니가 직접 텃밭에서 농약 대신 사랑과 정성으로 기른, 좀 더 자유분방하게 시원함을 분출하는 듯한 모습의 상추들. 출신과 경로는 모두 다를지언정 여하튼 어쩌다 나에게 도착한 이 소중하고 귀한, 예쁜 상추들. 바라보기만 해도 신선하게 푸르른, 봄여름 향기 가득 채운 사랑의 기운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는 이 상큼발랄한 초록의 존재들. 이 존재들을 어쩜 좋을까. 어쩜 정말 너무 사랑스러운 걸.


이렇게 어여쁜 상추를 어떻게 아름답게 먹을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비빔밥이 떠올랐다. 뭔가 그 순수함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달까. 그 맑고 창창한 연둣빛에 어울리는 메뉴는 비빔밥이 딱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상추 하나하나를 흐르는 물에 정성껏 씻어내고 있자니, 아이의 그림책에서만 보던 상추가 드디어 살아있는 존재로써 책밖으로 태어나 내 눈앞에서 응애응애 건강하고 씩씩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만 같았다. 그 자체로 나는 이미 벌써 다 먹은 듯, 마치 새로 돋아나는 새싹의 싱그러운 기운 같은 것으로 에너지가 모두 충전된 것만 같은 묘하고 신비로운 만족감을 느꼈다.


상추를 잘게 잘게 썰었다. 상추의 작고 고운 웨이브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띄게 다가왔고, 그 미세한 움직임은 뭐랄까, 우리 할머니 손에서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는 잔주름처럼 그렇게 어여쁘게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 보들보들하고 귀엽게 생겼네.’ 하고 피식 기분 좋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분이 정말 산뜻하게 좋았다. 영혼이 정화되는 것 같은 그런 맑고 깨끗한 기분이었다.


신나게 상추를 썰고 오이도 얇게 얇게 채 썰었다. 당근과 양파는 채 썰어서 팬에 후다닥 소금 한 꼬집 넣고 볶아 주었다. 재료를 다 준비한 다음에는 커다란 그릇을 준비하고 오랜만에 먹고 싶은 만큼 밥을 듬뿍 떴다. 그리고 준비한 상추와 오이, 당근과 양파도 먹고 싶은 만큼 듬뿍듬뿍 넣어준 다음, 고추장 한 스푼 푹 떠서 넣고, 참기름 한 스푼을 휘리릭 떨어뜨려 준 뒤, 깨를 송송송 뿌려주었다. 계란이 있으면 완벽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다 비벼진 비빔밥을 수저 한가득 한입 떠먹었는데.. 계란, 이거 없어도 맛만 좋구나. 된장국과 김치랑 같이 먹는데, 이런 꿀맛이 따로 없다. 한입 먹을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맛이었다.


평소 음식 사진을 잘 찍지 않는데, 이건 왠지 찍고 싶다는,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찍고 보니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건강 자연 밥상’. 이렇게 평생 먹으면 병 한 번 안 걸리고 무병장수할 수 있을 것 같다. 보기에도 아주 건강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영혼까지 덩달아 건강해지는 그런 밥상이다.


진짜 멋진 사람은 자신의 일상을 조리 있게 잘 꾸려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강한 사람은 가지고 있는 걸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내가 가진 ‘상추’라는 재료로 조리 있게 ‘비빔밥’을 만들어 먹은 나. 오랜만에 멋지고 강한 ‘어른’이 된 느낌이다. 내 손으로 직접 건강 밥상을 차려 먹고 있자니, ‘내가 나를 살게 하고, 내가 나를 치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 가득 뿌듯함이 솟구치려 한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자각이 들어 마음이 괜스레 뭉클하다.


상추를 바라볼 때마다 느껴지는 그 생명력, 이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 푸릇푸릇함, 청춘과 젊음과 앳됨을 연상시키는 그 선명한 연둣빛의 해맑은 시원함. 수분기 가득 머금어 무척이나 싱싱한, 신나게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그 초록초록의 싱그러움. 푸릇푸릇 건강하고 찬란한, 삶을 향해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강하고 꿋꿋한 의지가 느껴지는 그 생명력. 상추를 이렇게나 많이 보내주시면서, 상추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도록 만드시면서, 신이 나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백수린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에 실린 단편 <흰 눈과 개>에서, 세 개의 다리로 신나게 흰눈밭을 구르며 천진무구하게 뛰어 놀고 있는 개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경이로운 광경을 작가는 ‘온몸으로 뛰어오르는 생명력’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 생명력은 소설의 주인공인 아빠와 딸이 아무 말 없이도 단번에 용서와 화해에 이르도록 해준다. 생명력은 이토록 강력한 치료제이며, 그 자체로 강인한 ‘삶’인 것이다.


‘생명력’이라는 단어가 의식에 떠오를 때마다 마음에 넓게 퍼지는 무한한 안도감. 순간 시간이 정지된 듯,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궁극의 평화로움. 지친 영혼을 감싸주는 따스하고 감미롭고 포근한 그 느낌. 내가 두 아이를 품에 안을 때마다 느끼는 그 안도감과 평화로움도 아이들의 건강한 그 생명의 숨결에서 온 것이겠지.


이런 생각과 감상에 젖어 들면서, 나는 밥 해먹는 일이 결코 별 일 아닌 일이 아님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임을 다시 한 번 크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밥을 해먹는 일은 곧 ‘생명력을 키워나가는 일’이며, ‘삶을 향한 최고의 사랑 행위’인 것이다.


힘든 순간, 몰려오는 좌절감에 차라리 휩쓸려 떠내려 가버리고 싶은 순간, 그 고통을 기꺼이 끌어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삶을 향한 그 의지는, 언제나 밥을 먹으면서 시작될 수 있다고. 그리하여 밥 해먹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고. 어찌 보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끼니 거르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을 어서 중단해야 한다고. 이렇게 계속 되뇌인다. 정말 살고 싶다면 말이다. 늘 끼니를 챙기고 걱정하는 어른들의 말씀이 새삼 마음 깊이 와닿는다. 밥 해먹는 일의 소중함과 그 중대함을 언제나 잊지 않기를,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아침에 일어나 소설을 읽고 밥을 먹으려 하는 지금, 정신의 배부름이 육체의 배고픔을 알려주는 신호를 보내는 지금, 무척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다. 정말 기분 좋은 배부름, 살아있는 배고픔이다. 건강한 포만감에 오늘따라 베란다로 들어와 넓게 퍼지는 햇살이 더욱더 따스하게 느껴진다. 생명이 피어오르는,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이 소리와 감촉. 상추가 알려준 생명의 향기. 그 싱그러운 빛이 오늘의 나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음을, 이제는 뚜렷이 자각할 수 있게 되었음에 한없는 기쁨을 느낀다. 만족스러워진 마음으로 여유롭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 이제 상추비빔밥으로 생명력을 충전하러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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