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감’은 냉장고에 언제나 있어야 한다는 철칙을 내세우는 남편 덕에, 양파 당근과 더불어 감자는 늘 우리집 냉장고 신선야채칸에 구비되어 있는 식재료 중 하나다. 활용도가 좋아 어떤 요리에든 잘 어우러질 수 있어 여기저기 캐스팅 가능성이 높은 야채 삼총사. 그중 단연 중심적 활약이 돋보이는 감자.
감자채전, 감자조림, 카레를 해서 감자를 부지런히 먹었다. 그리고 ‘이제 또 뭘 해먹어야 하나’라는 고민이 시작될 즈음 떠오른 메뉴는, 바로 ‘감자된장국’. 거의 매일 먹는 된장국에서 배추나 무 대신 감자만 넣으면 되는, 초간단 고효율 메뉴다.
이제 된장국은 거의 자동화되었다. 밥솥이 알아서 밥을 지어내듯, 내 손이 된장국을 뚝딱 만들어낸다. 냄비에 물을 반보다 조금 더 넘게 넣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중강불을 켠다. 된장 한 스푼을 풀고, 다시마 한 조각을 넣는다. 미리 믹서기에 갈아 냉장고에 넣어둔 멸치가루를 꺼내 반스푼을 넣고, 이어서 참치액젓 한 스푼, 국간장 한 스푼을 넣는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올라올 때쯤 썰어둔 감자를 모두 넣는다. 스푼으로 눌렀을 때 저항감 없이 부드럽게 부서질만큼 감자가 뭉근하게 익으면 약불로 줄이고, 쪽파를 송송 썰어 넣는다. 한입 먹어보고 간이 부족하다 싶으면 소금 한꼬집을 살짝 넣는다. 달콤진득한 오늘의 메뉴 ‘감자된장국’ 완성.
뜨끈한 국물 한 입에 속이 스르르 풀린다. 아팠던 온몸 구석구석 끝까지 온기를 전달해주는 맛이다. 음식이 보약이라는 말이 이런 의미구나, 싶었다. 엄마가 되니 아픔은 거의 공포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당장 어린아이 둘을 돌보아야 하는데, 칭얼거리며 엄마를 찾는 아이들을 눈앞에 보면서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그 상황은, 다시 생각해도 참,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좋아하는 커피도 한순간에 뚝 끊어내버릴 수 있을만큼 강력한 몸살감기가 찾아왔었다. 하필 첫째아이 하원시간에 맞춰 찾아온 지독한 통증. 비상상황을 넘기기 위해 집에 있는 온갖 건강식품은 다 꺼내 흡입했더랬다. 한방기침감기약, 장어즙, 면역유산균, 모과도라지차, 등등. 아무튼 감기에 좋을 것 같은 것은 죄다 꺼내 삽시간에 다 먹었다. 아이의 저녁 밥상을 준비할 힘을 쥐어짜내보려는 발악, 이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간신히 몸을 움직여 대충 있는 걸로 밥을 먹이며 아이에게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아이는 무슨 의미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으며 ‘으응~’이라고 답했고, 엄마는 가슴이 시렸다. 밥을 먹은 뒤 (아이가 눕지 말라고 징징거려) 누울 수도 (몸에 힘이 없어) 앉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자세로 힘겹게 아이와 놀아주면서 생각했다. 아프지 말자고. 엄마는 아파서도 안 되는 거라고. 엄마가 먼저 건강해야 한다고, 밥 잘 챙겨 먹자고, 스스로에게 결심을 불어넣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마음을 다잡고 된장국을 끓였다. 가족을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감자된장국을.
역시 된장국은 된장국이다. 된장국은 언제나 내편인, 든든한 엄마의 맛이다. 언제나 힐링이다. 뜨끈하면서 깊고 깊은 그 맛은, 아픔과 통증을 희미하게 지워준다. 게다가 이번에 감자를 넣은 된장국은, 감자에서 우러나온 그 달콤진득한 맛이 어린아이 입맛에도 딱 맞는, 즐겁고 흥겨운 기분까지 자아내는 맛이었다. 덕분에 나는 엄마의 따듯한 사랑으로 아픔을 이겨낸, 엄마와 함께 있어 마냥 즐거운, 행복한 어린아이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엄마가 되어주어야겠다는 희망 가득한 생각을 하는 행복한 어른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감자와 된장국의 조합은 이토록 황홀했다. 파랑새는 늘 가까이 있었다. 늘 곁에 있었던 감자와 된장국. 이게 바로 나의 행복이었던 것이다.
화려한 음식, 뭔가 요리 같은 음식, 레시피라 할 만한 것이 있는 요리를 해야 할 것 같고, 또 하고 싶은, 그런 유혹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요리를 잘하는 어느 집 주부의 밥상에 올라가는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잘 차려진 알록달록한 요리, 그 비슷한 것을 따라 만들어내고 싶은 그런 욕심이 들 때가 있다. 그에 비해 나의 식탁은 보잘것없어 보이고 하찮아 보여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이렇게 이상하리만치 초라한 마음으로 괴로움에 젖을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문득. 요리를 하다 보면 이런 생각과 감정들이 종종 찾아올 때가 있다.
앞으로는 그럴 때마다 오늘의 ‘감자된장국’을 기억하려고 한다. 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하는,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언제나 나를 강하게 지켜주고 있는, 나의 작고 소박한 그리고 확실하고 진실한, 소중한 행복들. 이것을 알아챈 지금의 이 마음을 꼭 오래오래 기억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나의 부주의와 무관심 때문에 소중한 파랑새가 멀리 날아가 달아나버리지 않도록, 끈끈한 애정으로 꼭꼭 붙잡아두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오직 내 삶을, 내 일상을, 내 가정을, 내 밥상‘만’을 온전히 소유하고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모든 것을, 세상 모든 음식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심을 거두어들이고 싶다. 불쑥불쑥 찾아오곤 하는, 다른 집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이 더 맛있을 것 '같다'는 그 착각과 환상도 그만 과감하게 놓아주고 싶다. 그저 다만 소박한 나의 밥상에, 나의 지금에 만족하고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음식에 우주의 커다란 사랑 전체가 집약적으로 나를 위해, 오직 나만을 위해 놓여져 있다는 믿음을 상상하면서. 오직 나를 위해 마련된 이 식탁 위의 음식들을 결코 소홀히 무심하게 흘려 보내지는 말자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먹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우리 남편은 된장국에 김치만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울 수 있다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그리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라 난 정말 복이 많은 사람 같다. 헛된 화려함을 좇지 않고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남편이 나는 ‘래리’처럼 멋져 보인다. ‘인생은 래리처럼’이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보고선 이끌리듯 단숨에 읽어내려간 책. 역시나 래리는 소문처럼 멋진 사람이었다.
서머싯 몸의 소설 <면도날>에서 감정적으로 호소하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는 이사벨에게 주인공인 래리가 ‘난 당신이 아니잖아.’라고 단호하고 냉정하게 말하는 장면이 문득 눈앞을 스친다. ‘그치, 난 당신이 아니지. 난 나지. 난 오직 나이지.’라고 혼잣말을 해본다. 곧 ‘인생은 래리처럼’이라는 말은 ‘내 인생은 나처럼’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요리를 통해 오직 내 일상에만 침잠해 본다. 눈에만 보이는 허술한 행복이 아닌, 속이 꽉 채워지는 그런 든든한 행복을 추구하는, 실속 있고 주체성 있는 밥상을 차려내는, 진정 나답고 나다운 내가 되려 한다. 그렇게 ‘나’로서 ‘나’처럼 살아가려 한다. 요리도 인생도, 그렇게 한눈팔지 않고 뚝심있게,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