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고구마를 참 많이 먹었다. 간식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 둘 다 휴직을 했기에 수입이 줄어들어 간식 살 돈도 아까웠다. 찔끔찔끔 1kg씩 사던 고구마를 박스로 사서 쟁여두었다. 그런데 웬걸. 1kg씩 살 때에는 ‘벌써 다 먹었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박스 채로 사니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았어?’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였을까. 고구마를 어떻게 하면 다양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던 게. 가장 건강하게 먹는 방법은 삶아 먹기. 그런데 사람이 건강을 위한 음식만을 계속 먹다 보면... ‘맛’이 가장 우선인 음식을 찾게 되기 마련이다. 간단하면서 맛있는 고구마 간식. 뭐가 있을까?
감자로 피자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고구마로 만들어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고구마, 달걀, 치즈>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맛있는 것들의 조합이라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맛 보장이 확실한 메뉴. 내가 하는 요리가 다 그렇듯 별다르게 어려운 조리 과정도 없이 아주 간단하다.
고구마를 먹고 싶은 만큼, 혹은 소비해버리고 싶은 만큼 왕창 가져와서 뽀득뽀득 깨끗이 세척하고 껍질을 벗기고 채를 썬다. 이 과정이 이 요리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고로 이 과정만 넘기면 요리를 무사히 완성하게 된다는 뜻.
채 썬 고구마를 넓은 팬에 넣고, 소금을 약간 넣은 후 기름에 볶는다. 고구마가 익는 동안 달걀을 풀어 달걀물을 만든다. 고구마가 선명한 연두노랑빛으로 익어갈 때쯤 둥근 피자판처럼 모양을 잡아주고, 그 위에 달걀물을 붓는다. 달걀이 익어갈 때쯤 치즈를 올리고, 치즈가 녹을 때까지 뚜껑을 덮고 기다린다. 마지막으로 파슬리를 솔솔 뿌려주면 ‘고구마피자’ 완성!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을 아주 든든한 간식거리가 만들어졌다.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인기 만점. 피자를 좋아하는 나에게도 완전히 취향저격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가족들을 위한 요리를 하다 보면 내 입맛이나 취향은 뒤로 미뤄둔 채 남편과 아이가 잘 먹고 좋아하는 음식들 위주로 식단을 구성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다 보면 점점 나의 식욕은 저만치 달아나버리고, 먹고 싶은 마음이 희미해진 그 자리에는 요리하기 귀찮다는 마음이 진하게 올라온다.
그래서 가끔, 아니 자주, 나를 위한, 나의 식욕을 만족시켜 주는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식욕이 만족을 느끼고 유지가 될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요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므로. 즐겁게 요리할 때, 요리하는 과정이 진정 행복할 때, 가족들이 먹을 그 음식에도 진하고 다정한 사랑과 기쁨이 담길 것이므로.
주부로서 요리를 해나갈수록 엄마의 식욕은 가족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다. 엄마가 먼저 음식을 좋아하고 요리를 즐길 때, 엄마에게 요리가 의무가 아닌 재밌는 놀이가 될 때, 바로 그때, 가족들은 생동감 넘치고 꿈틀꿈틀 살아있는 건강하고 맛있는 매일의 밥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요리를 잘하려고 애쓰고 좋아해보려고 노력하는 대신, 나에게 먼저 자주 이렇게 물어봐주려고 한다. ‘너 오늘 뭐 먹고 싶어?’ ‘아무거나’라는 대답은 이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특정한 음식 혹은 어떤 맛이라는 답을 나 자신이 직접 내놓을 때까지 집요하게 묻고 또 물으며 나의 식욕을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 계속 자극해 볼 참이다. 그렇게 나의 식욕을 찾아가고 따라가는 일을 부지런히 해볼 참이다.
나의 식욕에 관심을 가지는 일, 나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일, 나를 돌보는 일, 나의 취향을 존중하는 일. 엄마에게도 아내에게도 주부에게도 이건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본질적이며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나를 사랑하는 일과 다름없는 일이기도 하고. 나를 사랑하는 일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내가 먼저 나를 잘 사랑하고 잘 돌볼 수 있을 때, 가족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도 지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고로 오늘의 교훈: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엄마가 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위한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내가 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