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바구니 속 말라가는 귤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귤들의 최후는 어떤 모습일까. 썩어서 음식물쓰레기통으로 보내지게 될까. 그렇다면 그건 언제쯤이 될까. 언제까지 저 모습 그대로 저기에 놓여 있을까.’
향긋한 내음과 주황의 온화한 색감으로 나를 기분 좋게 만들던, 시아버지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태어나게 된 사랑스러운 그 귤들은, 이제, 어느새, 나에게 은근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안겨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귤을 빨리 먹어서 이 감정들을 어서 날려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귤을 빨리 먹을 수 있을까? 귤을 갈아서 감귤주스 해먹을까 생각하다가 또 다른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귤의 상큼한 달콤함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그런 존재감 있고 색다른 요리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 이런 생각을 하며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닭고기.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으려고 며칠 전 사뒀던 것이다. 닭고기와 귤. 닭고기와 귤. 닭고기와 귤. 이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어디선가 봤던 ‘오렌지치킨’이라는 요리가 떠올랐고, ‘그래, 나는 귤닭볶음을 만들어보는 거야.’라는 영감 어린 결심이 마음에 자리잡았다.
닭고기를 꺼내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은 후 맛술을 조금 넣은 물에 담가두었다. 이렇게 닭고기가 잡내를 벗겨내는 사이, 귤이 담긴 바구니를 가져왔다. 엄마의 무관심과 무신경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어여쁜 귤들에게 사랑을 담아 마지막 눈인사를 보냈다. 그러고는 귤껍질을 벗기고 귤을 하나하나 까서 믹서기에 넣었다. 귤이 곱게 갈아지며 서서히 부피가 줄어드는 과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본래 자신의 영롱한 빛을 더욱 생생하게 드러내며 우아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믹서기 날이 회전하며 내는 그 시원한 소리가 마치 귤들이 내는 자유와 해방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믹서기 뚜껑을 열고 귤을 바라본다. 말라가던 귤들이 언제 그랬었냐는 듯 다시 수분을 머금은 채 생생한 주황의 빛깔로 나를 다시 설레게 한다. 이제 이 어여쁜 빛깔과 어우러질 또 다른 어여쁜 존재들을 준비할 차례. 감자, 당근, 양파. 언제나 즐거운 야채 삼총사다. 껍질을 벗기고 원하는 모양으로 재미있게 썰어서 볼에 담아 대기시킨다. 대파도 총총총 썰어 넣어야지. 룰루랄라. 귤과 야채들이 뿜어내는 다채로운 색과 향에 취해 기분이 업되는 시점에 도달한다.
잡내를 벗긴 닭고기는 흐르는 물에 다시 한 번 씻어 준 후 야채들이 있는 볼로 옮겨진다. 이제는 모두가 하나가 될 시간. 곱게 갈아진 귤도 넣어주고, <간장, 알룰로스, 소금, 후추>도 취향껏 넣은 후 조물조물 조물조물. 귤과 닭고기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열심히 열심히 조물조물을 해준다. 그리고 뚜껑을 덮어 냉장고에서 잠시 재워둔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재워둔 닭고기를 꺼내 팬에 볶아주면, 완성이다!
귤맛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귤의 그 상큼함과 달콤함은 고스란히 배어있는 매력적인 맛이다. 남편에게 귤을 갈아 넣었다고 얘기했더니 전혀 몰랐다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버지가 귤농사를 지으시기에 귤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는지를 보며 자란 남편은, 더욱 맛있게 ‘귤닭볶음’을 즐기기 시작한다. 귤처럼 사랑스런 요리가 완성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을 느끼며 남편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본다. 다른 고기는 질겨서 곧잘 뱉어버리곤 하는 아이도 귤향이 배어든 부드러운 닭고기살은 오물오물 맛있게도 잘 먹는다. 사랑스럽다. 아이의 먹는 모습은 언제나 사랑스럽다.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고기를 잘 먹지 않는 우리에게, 오늘의 요리는 만찬스러웠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참 사랑스러운 요리였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귤을 소비해버리기 위한 다소 불순한 목적으로 시작된 요리였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다분히 사랑스러웠기에.
요리를 하며 ‘사랑과 정성을 담는다’는 의미를 직접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과 정성의 과정과 결과는 늘 ‘사랑스러움’으로 귀결된다는 것도 직접 경험으로 알게 된다. 이런 면에서 요리하는 엄마는 사랑과 정성을 조물조물하며 가장 직접적으로 사랑스러움에 가닿는 사람이 아닐까. 요리는 사랑을 다루는 일, 사랑스러움과 만나는 일. 결국 요리는 사랑을 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