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송이버섯, 요리는 진정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by 읽고 쓰는 삶

오랜만에 새송이버섯을 샀다. 파격할인이라는 말에 또 혹해서 냉큼 집어왔다. 이런 식으로 어쩌다 보니 우리 집 식재료는 팔 할이 할인 출신인 듯하다. 그렇지만 할인한다고 무조건 다 사는 건 아니라고. 버섯이라서 산 것이다,라고 멋쩍은 웃음을 스스로에게 지어본다.


새송이버섯은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까. 사놓고 또 고민이 시작된다. 뭘 어떻게 해서 먹을지 고민 먼저 하고 식재료를 사는 게 보통의 순서 같긴 한데... 난 늘 반대다. 무작정 사놓고 후에 고민을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이런 방식도 꽤 괜찮은 것 같다. 나로 하여금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오늘은 뭘 먹을까?’하는 단순한 고민을 넘어서, ‘이 재료를 어떻게 활용해서 최선의 요리를 만들어낼까?’하는 전문가스러운 연구 차원의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런 일련의 사고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창의성과 상상력도 다시 깨어나 부지런히 일을 시작한다.


새송이버섯은 자주 사오는 식재료이긴 한데, 어쩐지 아직도 어떻게 먹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고 있다. 팽이버섯은 찌개 끓일 때 부재료로 넣어 먹고, 표고버섯은 잡채 만들 때 같이 넣어서 주로 먹는 편인데. 그럼 새송이버섯은? 고깃집에서는 고기랑 같이 구워서 먹던데. 어쩐지 집에서는 그렇게 잘 해먹지 않게 된다. 흠. 머리를 요리조리 굴려본다.


새송이버섯으로 어떻게 고기 느낌을 낼까 고민을 해본다. 고기보다 가볍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고기처럼 쫄깃쫄깃 씹는 식감과 든든한 단백질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메인반찬을 원한다. 그래, 그럼 ‘새송이버섯고기’를 만들어 먹으면 되겠네. 마침 집에 깻잎과 상추도 있으니, 고기만 준비하면 되겠네, 하고 확신의 메뉴 선정을 마친다.


갈비집에 가서 먹을 때에도 생갈비보다 양념갈비를 선호하는 나는 새송이버섯고기에 입힐 양념맛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있어 고기는 양념맛이 핵심이기에, 신중하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하지만 역시 간단한 게 최고. 간장과 알룰로스를 바탕으로 하고 굴소스로 감칠맛을 더해 양념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평소 단맛을 내기 위해 황설탕이나 쌀조청, 아니면 물엿이나 꿀을 종종 쓰곤 했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사본 알룰로스. 끈적거림도 덜해 요리하기에도 편하고 맛도 어쩐지 적당하고, 뭔가 신세계다.


작은 볼에 <간장1, 알룰로스1, 굴소스0.5, 물 약간> 넣고 섞어서 양념을 만들어둔다. 양념이 있으니 벌써 요리가 완성된 듯 든든하다. 여유롭게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새송이버섯을 원하는 모양으로 자유롭게 썰어낸다. 이렇게도 썰어보고 저렇게도 썰어보고, 이런 모양 저런 모양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썰어내다 보면 스트레스가 절로 풀리는 기분이다. 아니, 이건 단지 스트레스 해소 차원을 넘어선, 어떤 내 안에 고여 있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 충족되는 느낌까지 들게 만드는 무엇이다.


예열해둔 팬에 기름을 넣고 다진마늘과 파를 볶는다. 먹음직스런 향이 솔~솔~ 올라오면 다양한 개성의 모양을 한 새송이버섯들을 하나씩 팬 위에 올려놓는다. 나름 꽤 설레는 순간이다. 뭔가 준비된 상태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할 때의 그 느낌. 이제 비로소 진짜 뭔가가 시작이 되겠구나 하는 그 느낌. 두근두근. 이런 생각과 감정을 한껏 의식하면서 볶듯이 굽듯이 그 중간 어디쯤으로 버섯을 익히다 보면, 어느새 새송이버섯에 양념옷을 입혀줄 시간이 다가온다.


양념을 두를 때 나는 그 치리릭- 소리가 나를 한껏 더 들뜨게 한다. 양념이 고루 깊게 잘 배어들도록 새송이버섯을 요리조리 움직여주고 난 뒤 수분이 날아갈 때까지 조려주면 드디어 맛깔스러운 ‘새송이버섯고기’ 완성이다. 비주얼을 보고 메뉴명을 수정한다. ‘양념 새송이버섯고기’. 짙은 갈색의 윤기가 좔좔 흘러넘치는, 침샘 폭발을 유도하는, 만족스러운 비주얼에 혼자 조용히 감탄을 해본다. 접시에 옮겨 담고 깨가루를 솔솔 뿌리는데, 기쁨의 미소를 감출 수가 없다. ‘오늘도 성공인 건가?’ 다소 자만스런 발언도 과감하게 던져보며 기쁨을 만끽한다. 과장스럽게 표현하자면, 성취감과 희열감이 온몸에 퍼져나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무튼 엄마는 이런 순간들로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남은 새송이버섯은 달걀을 부쳐서 전을 만들기로 한다. 밀가루 묻히고 계란옷 입혀서 노릇노릇 구워주기. 전이지만 이것도 고기라고 명명하면 고기가 되는 거 아닌가? 고기라고 생각해서 먹으면 그게 고기지 뭐. 이렇게 쿨하게 생각해보며 ‘새송이버섯계란고기’를 만든다.


오늘은 고기 밥상이다. 새송이버섯을 고기스러운 고기로 만들기 위한 나의 머리 씀과 마음 씀이 농축되어 있는 재미나고 알찬 밥상이다. 가족은 이걸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모르겠지. 알 수가 없지. 이토록 창의적이고 즐겁고 재미있는 과정은 식재료를 사는 순간부터 먹는 순간까지의 요리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오직 나만이 알고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일 것이다. 소중한 나의 특권. 참 소중하다고 참 감사하다고 되뇌어본다.


요리하는 일상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면, 요리하는 과정에 이토록 머리와 마음을 쓰는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모습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너무 아무렇게나 생각 없이 행동하면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무기력한 마음의 소리가 저절로 쏙 들어간다. 요리는 나를 예술적인 사람으로, 창의적인 사람으로, 재미있고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요리를 먹은 나의 몸이 포만감을 느끼듯, 요리를 하는 나의 마음 또한 풍요로움으로 가득 부풀어오르고 있다.


이렇게 요리하는 과정에 애정이 더해간다. 애정이 커질수록 나의 몰입도 더욱 깊어진다. 더욱더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해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부지런히 생각을 작동시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나의 게으른 습성이, 이 고질적인 성향이 빠르게 치유되고 있다. 요리를 통해 예술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왜 삶을 그리고 요리를 예술에 비유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새삼 오묘하고 철학적인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삶에 대한 능동성과 적극성이 커져가는 이 기분이 너무 좋다. 살 것 같은, 살 맛 나는 느낌이다. 요리는 나를 진정 생각하는 사람으로, 참여하는 사람으로,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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