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께서 시금치가 한가득 든 봉지를 가져오셨다. 갑작스런 시금치의 방문이다. 흙이 많이 묻어있어 흡사 검고 뭉툭한 물체로 보이는 그것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이걸 다 어떻게 한담.’ 이런 고민을 하며 하루이틀쯤은 괜찮겠지 싶은 마음으로 냉장고 한켠에 보관해 두었다.
시금치는 무침으로만 먹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이 좀 많다. 저 많은 시금치를 무침으로만 다 해먹기에는... 생각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다. ‘시금치로 할 수 있는 요리, 무침 말고 뭔가 색다른 음식 없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검색을 시작한다.
‘시금치볶음밥’이라고 검색창에 적어 엔터키를 누른다. ‘간단한’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글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시금치페스토’라는 키워드가 새롭게 다가온다. 클릭을 해서 스크롤을 내리며 대충 훑어보니 단어가 주는 그 어려운 느낌에 비해 생각보다 꽤 간단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료도 거의 구비되어 있고. 좋아. 해보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잠깐 머릿속으로 조리 순서를 그려본다. 시금치페스토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시금치 데치기→재료 다같이 넣고 믹서기에 갈기>, 이게 전부다. 정말 간단하다. 만들어 놓으면 양념처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니 너무 좋다. 완전 내 스타일! 반가운 레시피를 발견하면 무척 기쁘다. 룰루랄라 신나서 주방으로 향한다.
돌이켜보면 시금치를 데치는 방법을 완전하게 익히기까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일단 물을 센불로 팔팔 끓인다. 물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올 때쯤 소금을 한스푼 넣은 후 시금치를 마저 넣고 1분 정도 조리집게로 저어주며 데친다. 열탕에 들어갔다 나와 차분해진 시금치는 채반에 얼른 비우고 찬물로 샤워를 시켜주어 건강하고 싱싱한 초록의 싱그러움을 되찾아준다.
이 간단한 과정도 처음 할 때에는 결코 쉽지 않았다. 물이 ‘팔팔’ 끓을 때라고 하면 정확히 어느 시점을 말하는 건지. 물이 대체 언제면 다 끓을까 하며 냄비 뚜껑을 시도때도 없이 들쳐보며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 데치려고 하는 시금치 양에 따라 달라지는 ‘1분 정도’라는 시간의 의미. 이 괄호 속 이야기들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더랬다. 시간 조절과 기다림과 타이밍, 어려운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시금치를 다 데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금치페스토를 만들기 시작한다. 일단 재료 준비부터 해볼까. <시금치 80g, 마늘 3톨, 올리브유 2스푼, 소금 약간> 이렇게 레시피에 나와 있는데, 어디 보자. 올리브유가 없네. 어쩔 수 없다. 아보카도유로 대체하자. 시금치 양도 많으니까. <시금치 160g, 마늘 6톨, 아보카도유 2스푼, 소금 약간, 설탕 약간> 이렇게 바꿔서 믹서기에 넣고 잘게 다져질 때까지 간다. 이렇게 간단하게 시금치페스토 완성!
맛을 보니 오, 그럴듯하다. 상상했던 것 이상의 맛이다. 간단한 수고로 이렇게 훌륭한 맛을 얻을 수 있다니, 뿌듯함과 기쁨이 솟아난다. 나무 수저로 조금씩 살살 떠서 유리 반찬통에 옮겨 담는 그 과정에 집중한다. 생생한 초록의 색감과 짙은 갈색 나무색, 투명하고 깨끗한 유리의 반짝이는 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내 눈과 마음을 아름답게 정화한다. 오랜만에 사진을 찍고 싶은 기분에 얼른 휴대폰을 가져와 사진 한 장을 찰칵 찍는다. 하지만 역시 사진에 잘 담기지 않는다. 그 자연스럽고 고운 살아있는 아름다움은. 이런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자세히 바라보며 눈과 마음에 담아둬야 한다.
시금치페스토를 활용하여 ‘시금치볶음밥’을 만든다. 먼저 냉장고에 있는 야채들을 모두 꺼낸다. 오늘의 채소는 <당근, 양파. 표고버섯>이다. 채소들을 잘게 다진다. 예열해 둔 팬에 기름을 적당히 두르고 채소들을 모두 넣고 소금과 후추를 약간 넣는다.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 볶다가, 밥을 넣어 볶고, 마지막으로 시금치페스토를 적당히 넣어 볶으면 완성. 처음 해보는 요리의 맛은 과연, 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한입 떠서 먹어본다. 과연, 괜찮다. 성공이다. 가족들에게 얼른 먹여주고 싶은 맛. 기분이 좋다.
볶음밥에 넣어 먹고 남은 시금치페스토를 다른 요리에 활용해보기로 한다. 마침 마트에서 1+1 할인을 해서 사두었던 모짜렐라 피자 치즈가 떠오른다. 치즈를 사면서 피자를 해먹으려고 같이 샀던 또띠아판. 그리고... 또... 냉장고를 둘러보니 방울토마토가 나를 보고 방긋 웃는다. 이건 운명이다! ‘시금치토마토피자’를 만들어 먹기로 결정.
이 또한 매우 간단하다. 팬에 또띠아판을 올린다. 또띠아판에 마요네즈를 넓게 펴 바르고, 시금치페스토를 바른다. 그 위에 방울토마토를 취향껏 썰어 올리고, 치즈를 듬뿍 올린다. 뚜껑을 덮고 치즈가 녹을 때까지 약한불에 굽는다. 마지막으로 파슬리를 살짝 뿌리고 꿀 살짝 얹으면 완성. 다 구워진 피자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자태가 예술이다. 물론 맛도 예술이다.
시금치와 함께하는 즐거운 여정이 이렇게 끝이 났다. 이렇게 냉장고 속 시금치를 뿌듯하게 마무리 지은 적이 있었던가. 정말 보람있다. 시금치와 친한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앞으로도 이 초록의 친구와 오랜 시간 함께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 기쁘고 든든하다. 요리는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