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에 대하여
자율학습이 끝나고 나온 저녁,
해가 기울어 저녁바람이 부드럽게 불 때.
하나둘씩 가로등이 켜질 때.
기지개를 켜며 놀이터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었다.
지금은 가수가 된 친구와 책가방을 메고 땅을 보고 걸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서로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퇴근길 산책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는 젊은 아빠와 초등학교 1학년 같은 소녀를 본다.
자전거를 끌고 온 아빠의 하얀 반바지와 앙상한 다리를 기억한다. 유치원 때던가?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의 나는 보름달 빵과 초코우유를 먹으며 경찰서에 앉아 있었다. 슬픔 기쁨 반가움 등 그런 감정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빵과 우유만 집중했었고, 내 눈높이에는 아빠의 반바지와 자전거가 있었다. 아마도 뒤에 앉아서 아빠 허리를 꼭 붙잡고 어스름해지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첫아이를 낳고 엄마집에서 기거할 때, 봤던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남자 주인공이 강변의 카페에서 해 지는 한강을 오래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다. 조 카커의 Many rivers to cross 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노래와 석양이 좋아서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내가 우리 애들보다 어렸을 때, 매일 매일 밖에 나가서 놀았고, 어스름이 지면 베란다에서 엄마가 내 이름을 불렀다. 크게. 그리고 길게. 선아야! 그 말에는 동생들 데리고 얼른 들어와서 씻고 밥먹으라는 말씀이 모두 들어있었다. 나는 고무줄 놀이를 많이 했다. 월화수목금토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장난감 기차가 칙칙떠나간다 과자와 설탕을 싣고서, 간질간질간질 봄바람 불어온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온단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돌아온단다. 뛸 때는 꼭 노래를 부르며 사뿐사뿐 뛰었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할 때 가장 짜릿하게 재미있는 놀이는 숨바꼭질이었다. 숨죽여 남의 집 대문 뒤에 숨어있는 기분. 인기척이 나면 재빨리 내빼서 야도대(야도! 하고 치기로 약속한 기둥이나 벽 같은 곳)로 달렸다. 점점 어두워질수록 놀 시간은 줄어들고,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찾기 어려워진다. 친구와 새로 이사온 어수룩한 아이를 오래도록 술래를 하도록 골탕먹이며 악마처럼 키득키득 웃었던 기억도 난다. (미안하다. 친구야! ㅋㅋ)
사춘기였던 중학생 시절. 나는 곧잘 옥상에 올라가서 놀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고, 벅찬 감정에 빠지곤 했다. 문학소녀였고 책 속의 얘기에 빠져서 혼자 진지하고 슬프고 심각했었다. 어린 왕자,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좁은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성채, 가시나무새, 서부전선 이상없다, 생의 한가운데, 데미안.
어린왕자는 별이 작아서 의자를 옮겨가며 몇 번이고 저녁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어림하면 약 만오천 번 정도의 저녁놀을 본 셈이다. 하루에 꼭 한 번. 하루하루 소중했다.
하늘을 우러르며 하루의 고단함과 보람을 새삼 감사한다. 어스름이 지는 그 시간, 지나간 일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또 감사한다. 오늘도 해가 지평선을 붉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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