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예술
어떤 단어는 특정 장소에서 본래의 뜻과 다르게 나쁜 뜻으로 쓰일 수 있다. 이를테면 '우아함' '고상함'도 그런 경우다. 참 좋은 말인데 어떤 경우, 이를테면 영업이 매우 하드한 직장의 경우엔 "지금 우아하게 일하시는 거임?" "혼자 고상하시네?" 이런 말은 좋은 뜻은 아니다. 또 '착하다'는 단어도 그렇다. "에이, 이건 너무 착해!" "좋은 게 좋은 게 아냐." 나쁜 남자가 멋있게 여겨지고 착한 건 능력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단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아냥거릴 때도 쓰인다.
"예술하네!" "지금 예술하는 거야?"
예술! 예술이 어때서? 이 세상에서 예술 말고, 과연 할 게 무에란 말인가!
점심 시간의 탈출, 점심 시간의 행복을 표현하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창작의 욕구가 샘솟는다.
남은 음식과 접시의 예술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ㅡ 덕 ᆞ 미ᆞ 성이라는 친구들에게서 처음 발원한 작품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어디서든 먹고 나면 그 세계의 아이 얼굴을 만들었다. 이 작업의 끝은 접시를 가져가는 직원이 이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짓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럼 우리는 똑같이 웃음을 지으며 식당에서 일어난다.
중국 ᆞ일본 ᆞ이태리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개구쟁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눈 코 입과 헤어스타일을 만들면서 상상의 세계로 잠시 날아갔다 온다.
최대한 심플하게도 가능하고, 고도의 불규칙적인 현대미술도 가능하다.
어떤 도구를 활용한 조합도 가능하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눈코입 외에도 중요한 부분이 존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주근깨같은. 또 있다.
남은 음식과 접시의 예술을 접하며 새삼 눈썹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눈썹의 각도를 통해 예술가는 외계 소년 소녀들의 감정이 흥분인지 집중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Girl from Ipanema 라는노래가 떠오른다. 보사노바 리듬이었던가. 그냥 먹기만 하는 점심시간과 웃음으로 승화되는 점심시간은 그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고추장의 붉은 빛깔에는 설레는 마음을 담았다. 작품을 위해 식욕을 희생하지는 않는다. 너무 매운 고추라면, 먹다 흘린 잡채의 당면이라면, 그 순간만 존재하다가 웃음의 나라로 사라지는 소년과 소녀들에게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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