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vs.마음, 진짜 콘텐츠의 기준
말하고 싶은 마음이 콘텐츠를 만든다
― 정보 vs. 마음, 진짜 콘텐츠의 기준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까요?”
이 말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도 드뭅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야기하는 존재였지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불빛이 흔들리는 동굴 속, 벽화에 그림을 새기던 그 시절에도 우리가 나눈 건 단순한 사냥 정보가 아니었지요. 그 속엔 두려움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으며, 상실과 희망이 함께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정보를 주고받는 동시에, 마음을 건네는 존재였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콘텐츠의 바다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수많은 영상과 피드, 스토리와 게시글이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요. 하지만 그중 어떤 콘텐츠는 유행처럼 흘러가고, 어떤 콘텐츠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그 차이는 단 하나, 정보를 전달했는가, 마음을 건넸는가입니다.
정보는 클릭 몇 번이면 쏟아집니다.
하지만 마음은 검색되지 않습니다. 정보와 다르지요.
마음을 건네는 콘텐츠는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고, 삶을 움직입니다.
영화 〈도가니〉를 떠올려보세요.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진실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분노했고, 사회는 움직였으며, 결국 법이 바뀌었습니다.
정보가 아니라 마음이 세상을 바꾼 순간이었습니다.
프랑스 작가 실비 제르맹은 『페르소나주』의 첫 장을 팔레스타인 시인 마하무드 다르위시의 시로 시작했습니다.
“어슴푸레한 문자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써라, 그래야 존재할 것이다.
읽어라, 그래야 발견할 것이다.”
-마하무드 다르위시 <배회증(徘徊症)>
실비 제르맹은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을 때 이 시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써라, 그래야 존재할 것이다.’ - 쓰는 행위는 단순한 정보 기록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디아스포라 시인으로 살았던 다르위시는 쓰기와 읽기가 존재를 지탱하는 일이라 여겼던 것이죠. 그런데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시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더라. 하지만 시인을 바꿀 수는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문학이, 시가 세상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 변화는 이미 시작됩니다.
진짜 콘텐츠도 시와 같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먼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그 마음이 누군가의 공명을 일으키고, 그 공명이 세상으로 번져나가죠.
결국 콘텐츠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언어입니다. ‘무엇을 전달할까’보다 ‘왜 전하고 싶은가’를 묻는 순간, 그 말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오래 남습니다.
말하고 싶은 마음 — 그 진심이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는 것입니다.
‘책읽는청주’ 캠페인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맴돌았습니다.
“책이 정말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그 물음에 주저없이 “네”라고 답해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청주의 공공도서관 사서 김주란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 탕비실에서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습니다. 그에게 물었죠.
“라디오에서 이 캠페인을 어떻게 알리면 좋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말했습니다.
“PD님, 선정도서를 매일 라디오에서 읽어주면 어떨까요? 책 한 권을 시민 모두가 함께 듣는 거예요. 매일 같은 시간에 한 페이지씩 낭독하면, 언젠가 한 권을 다 듣게 되겠죠.”
그날 이후, 우리는 <원북원시티, 책읽는 라디오>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저녁 퇴근길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와 작가, 시민들이 번갈아가며 책을 낭독했습니다.
소설은 드라마로 만들기까지 했지요. 활자가 라디오 부스에서 목소리가 되어 전파를 탔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이들은 문장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며칠 뒤, 김주란 사서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PD님, 오늘 방송 들은 분이 도서관에 찾아오셨어요. ‘라디오에서 책 읽는 걸 듣고 책을 빌리러 와봤어요’ 하시더라고요.”
그 한마디에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라디오의 전파를 타고 흘러간 목소리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도서관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사람들은 책을 빌리러 도서관을 찾아 오기도 했지만, 사실은 라디오에서 들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책을 찾아 온 것이었죠.
어느날, 김주란 사서가 얘기하더군요.
“도서관이 더 이상 책을 빌리는 곳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젠 누군가의 마음이 열리는 공간이 된 것 같아요.”
그의 말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책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묻던 내게, 이미 현장에서 답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콘텐츠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조회수? 구독자 수? 알고리즘의 추천?
진짜 콘텐츠는 정보를 넘어 마음을 건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알아야 할 사실’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전하는 것이 진짜 콘텐츠의 힘입니다.
러시아 문학이론가 바흐친은 말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끝없는 대화의 과정이다.”
그 말처럼, 한 사람의 말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문장으로 다시 태어날 때, 이야기는 살아 있습니다.
오늘의 콘텐츠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넘어 공동 창작의 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누군가에 의해 재해석되고, 또 다른 맥락에서 살아난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이야기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말하고 싶은 마음이 콘텐츠를 만들고, 듣고 싶은 마음이 그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이 말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은 뒤, 당신은 어떤 서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나요?
우리는 모두 방송인입니다.
마이크가 없어도, 카메라가 없어도, 일상 속에서 흘러나오는 말 한마디, 노트에 적은 문장 하나, SNS에 남긴 댓글 하나가 누군가에게 닿아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듭니다.
정보는 사라지지만, 마음은 남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남을 때, 우리는 단순한 청취자에서 창작자가 됩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