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콘텐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방송 인류 시대, 어떻게 진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
-과잉 콘텐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우리는 지금 ‘방송 인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마이크를 켜고, 카메라 앞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유튜브와 팟캐스트, 틱톡과 인스타그램 라이브까지, 방송은 더 이상 거대한 스튜디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손 안의 스마트폰이 곧 나의 방송국이고, 세상은 수백만 개의 ‘이야기’로 끊임없이 진동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데, 정작 ‘진짜 이야기’는 찾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말하고, 찍고, 편집하고,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정작 무엇을 들어야 할지 선택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클릭해도, 잠시 스쳐 지나갈 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보여주는 기술’은 넘쳐나는데, ‘닿는 언어’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는 가운데 ‘진짜 이야기’는 오히려 더 찾기 힘들어졌지요.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콘텐츠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를 감각하는 능력이 아닐까요? 즉 “이 이야기에 내 마음이 반응하는가?”를 묻는 감각입니다. 그 감각이 바로 과잉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생존 능력이 될 수 있겠죠.
저는 방송을 하며, 그 감각을 ‘한 문장’에서 배웠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화려한 편집이나 자극적인 제목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에 닿는 문장 한 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건축가 백희성 작가의 『보이지 않는 집』 북콘서트를 기획하며 그를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 ‘빛, 숨결, 기억, 시간의 틈’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방송이 나간 뒤, 청취자들이 북콘서트 현장에 찾아왔습니다. 놀랍게도 책을 이미 읽고 온 사람보다 ‘방송을 듣고 궁금해졌다’며 찾아온 이들이 더 많았지요. 북콘서트가 끝난 다음 날, 방송국 홈페이지에 이런 사연이 올라왔습니다.
“중학생 아들과 함께 백희성 작가 북콘서트에 참여했습니다. 작가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들이 말하더군요.
‘엄마, 저 아저씨 이야기 들으니 가슴이 뛰어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한참 동안 멈춰 섰습니다. 소년의 마음속에 불이 켜지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지요. 그 불빛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야기의 본질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닿는 것’이라는 것을.
조지프 헨릭은 『위어드』에서 18세기 산업혁명이 세상을 ‘빛’으로 바꿨다며, ‘사람들은 또한 금속선을 통해, 그리고 마침내는 보이지 않는 파동을 통해 목소리를 전달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했습니다. 라디오 탄생의 인류사적 의미를 짚은거죠. 라디오가 세상에 처음 울려 퍼진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1906년 크리스마스 이브, 캐나다의 발명가 페선던은 축음기로 헨델의 ‘라르고’를 틀고, 직접 바이올린으로 캐럴을 연주한 뒤 성경 한 구절을 낭독했습니다. 그날, 대서양 위를 항해하던 통신사들은 모스 부호 대신 처음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놀란 것은 기술의 혁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목소리 속에 인간의 숨결과 떨림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그것이 라디오의 시작이자, 방송의 본질이었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수십만 개의 채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한 문장 속에 있습니다.
과잉의 시대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합니다.
첫째, 선택의 기준을 조회수가 아니라 ‘울림’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가 내 삶에 어떤 작은 균열을 만드는가, 나를 잠시 멈추게 하는가? 물어야 합니다. 그 질문이 당신의 나침반이 되겠죠.
둘째, 내가 발신자가 될 때는 ‘대단한 말’보다 ‘필요한 말’을 고민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한 문장, 그 한 문장이 있다면 당신의 이야기는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수많은 영상과 글, 음악과 광고 속에서 당신이 끝내 잊지 못한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
그 문장이 책에서 왔든, 라디오에서 들었든, 혹은 누군가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흘러나왔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 문장이 당신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방송하는 시대,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구분 짓는 것은 장비나 기술이 아닙니다. 당신이 품고 있는 단 하나의 문장. 그것이 진짜 이야기를 찾는 감각이고,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흔든 한 문장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