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캠페인의 시작
책으로 도시를 프로듀싱하다.
-독서캠페인의 시작
책읽기는 보통 개인적 행위의 범주에 속합니다. 마치 지나간 일기처럼 혼자만의 시공간에서 읽히지만, 때로는 도시 전체의 분위기를 흔드는 파동이 되기도 합니다. 원북원시티가 시작된 텍사스의 ‘앵무새 죽이기’처럼 말이죠.
우리는 흔히 도시의 변화를 거대한 개발 사업, 정치적 결정, 경제 성과만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그보다 더 조용하고 오래 가는 힘은 이야기의 힘입니다. 한 권의 책이 공동체를 만나고, 그 공동체가 책을 통해 다시 자기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도시는 서서히 달라집니다.
도서관이 한 권의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거리의 카페들이 북토크와 낭독회를 열고, 언론이 한 권의 책을 소재로 사람들의 삶을 비춘다면, 결국 그 도시는 책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독서 캠페인이 아니라, ‘책으로 도시를 프로듀싱하는 일’이 되는 것이죠.
책은 단순히 읽는 대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어를 조율하는 매개체이자,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일은 사실상 자기 자신을 다시 읽는 일이지만, 그것이 캠페인으로 확장될 때는 도시가 자기 자신을 다시 읽는 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책읽는 청주’ 11회 선정도서로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정했을 때였습니다. 그 무렵 우리는 매년 두 차례 열리던 책읽기 축제를 겨우 한 번만 열 수 있을 만큼 예산이 축소된 상황에 처했습니다. 어렵사리 키워온 책읽기 운동인 책읽는청주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강렬한 메시지가 필요했습니다. 문학의 힘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한다는 의지가 모아졌고,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이 원북으로 선정됐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 도시의 분위기와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청주와 청원이 행정적으로 통합되던 해였지요. 시민들에게 ‘새로운 도시,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캠페인 시작을 알리는 선포식 장소도 청주 도심이 아니라, 청원에서 청주로 바뀐 오송역 대합실로 정했습니다. 그곳에서 책읽는 청주는 광주행, 부산행 KTX 기관사에게 『두근두근 내 인생』 책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광주시립도서관과 부산시립도서관에 책읽는 청주 선정도서를 기증하면서 도시의 경계를 넘어 책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선포식 퍼포먼스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시민들의 마음을 흔드는 자리는 북콘서트였습니다. 김애란 작가가 직접 청주에 와서 시민들과 만나는 무대는, 말 그대로 책과 사람이 만나는 축제였지요.
북콘서트 무대의 시작은 음악이었습니다. 암전된 도서관 강당 안에 노르웨이 민속 음악 바이올리니스트 수산네 룬뎅의 ‘소중한 사람’ 선율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채환의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노래. 음악은 책 속 이야기와 맞물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순간 도서관에 모인 시민들은 책을 읽는 독자에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로 변했습니다.
김애란 작가는 무대 위에서 청년 시절의 경험, 글쓰기의 고민, 그리고 『두근두근 내 인생』이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을 솔직하게 풀어놓았습니다. 그녀의 입담은 책의 감동을 넘어, 작가와 독자가 서로의 삶을 비추는 시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 날 깨달았습니다. 책은 혼자 읽지만, 그 울림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작가와 독자, 음악과 낭독, 질문과 대답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책은 도시의 이야기로 변했습니다. 그날 시민들의 표정에서, 책으로 도시를 프로듀싱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 북콘서트가 끝난 후, 많은 시민들이 도서관 게시판과 방송국 홈페이지, 온라인 카페에 후기를 남겼습니다.
“내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모 세대의 청춘을 다시 이해하게 됐다”
“병을 가진 아름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읽었다”
…
책은 단지 이야기일 뿐이지만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하는 순간, 그 책은 도시의 공동 기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독서 캠페인을 단순한 이벤트로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독서 경험이 도시의 정체성으로 확장되는 과정’이었죠. 누군가에게는 자기 성장의 거울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세대를 이해하는 창이 되었으며, 또 어떤 이에게는 문화적 자긍심이 되었습니다.
도시는 결국 수많은 개인들의 기억이 겹치면서 만들어집니다. 한 권의 책이 수백, 수천 명의 기억 속에 각자의 방식으로 새겨지고, 그것이 다시 모이고 이야기될 때 도시의 문화 DNA가 형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책으로 도시를 프로듀싱한다’는 의미이겠지요.
이제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이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때, 우리는 한 권의 책을 꺼내 듭니다.
자녀에게, 동료에게 건네고 싶은 문장이 담긴 책을 추천하지요.
도시는 그렇게 개인의 추천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그 책을 이야기하는 순간, 도시의 품격은 더 깊고 풍성해집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청주의 분위기를 변화시킨 것처럼, 당신이 추천하는 책은 지금 당신이 속한 공동체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