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추천한다는 건, 내 삶을 고백하는 일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책을 추천한다는 건, 내 삶을 고백하는 일
사람들은 흔히 ‘추천’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맛집을 추천하듯, 드라마나 영화를 추천하듯, 책도 역시 그저 좋으면 권하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책만큼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내가 읽은 책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순간, 사실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고백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좋아서, 나누고 싶어서’ 내민 한 권의 책은,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는 취향의 선언이고, 동시에 “이 부분에서 나는 위로받았고, 나를 버티게 했어요”라는 내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20–30대들이 책을 추천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인데요. “나는 이런 문장에 끌려요”라는 말은 곧 “이게 지금의 나예요”라는 고백이기도 하지요.
40–50대에게는 책 추천이 세대 간 나눔과 회복의 통로가 됩니다. “이 책에서 내가 얻은 배움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은 곧 “당신과 연결되고 싶습니다”라는 초대장이 됩니다.
책을 추천한다는 것은 결국,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나 자신을 건네는 일입니다. 그래서 책을 건네는 순간은 언제나 설레면서도 약간 긴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따뜻한 자기표현이 됩니다.
저에게도 그랬습니다. 제가 추천했던 수많은 책 중 잊을 수 없는 몇 권이 있습니다. 그 책들을 고르던 순간, 사실 저는 제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던 겁니다.
2006년 봄, ‘책읽는 라디오’의 ‘이 달의 책’을 고르는 제작회의에서 저는 서경식 교수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제안했습니다. 이 책은 표지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느끼게 했습니다. 독일 태생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이 아우슈비츠에 끌려가기 직전 그린 ‘유대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자화상’은 단숨에 제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표지에 실린 망명자의 자화상이 저를 책으로 끌어 당겼지요.
책을 펼치자 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작가는 평생 ‘추방당한 자의 시선’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형들이 억울하게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현실, 그리고 자신도 언제나 재입국 허가증을 받아야 하는 불안정한 처지. 늘 ‘경계인’이었지요. 그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미술 작품 앞에서 위안을 얻고, 그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한 이야기는 단순히 재일조선인의 경험을 넘어, 우리 모두가 가진 이방인의 감각을 환기시켰습니다.
저는 이 책을 추천하며 사실 제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습니다. “나도 늘 경계 위에서 살고 있다고 느낀다”고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때로는 조직 안에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불안. 『디아스포라 기행』을 권하는 순간, 저는 저의 취약함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뜻깊었습니다. 서경식 선생과 직접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더듬더듬 한국어로 말하다가 중요한 순간엔 일본어로 바꿔 말했습니다. 통역이 이어졌고, 대화는 삼자통화처럼 이어졌습니다. 그 서툴지만 진솔한 언어의 교차 속에서, 저는 ‘언어의 불완전성’조차도 진실을 가리는 장벽이 될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오히려 불편한 언어가 그의 ‘경계인의 삶’을 더 선명하게 증언하는 듯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책 추천이 단순히 ‘좋은 책 알리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불안을, 나의 흔들림을, 나의 고백을 건네는 일이었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책은 강명관 교수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입니다.
대부분의 역사책이 왕과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해왔는데, 이 책은 달랐습니다. 이름 없는 장삼이사, 소위 개똥이와 소똥이들의 이야기를 역사서의 행간에서 길어 올렸지요. 혜민서와 활인서 같은 민초들을 구제한 의료사, 시체탕(柹蔕蕩)이라는 이름을 빌려 독자의 눈길을 붙잡는 이야기, 과거시험장의 부정 스캔들과 도적떼의 서사.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추천하면서, 사실 이렇게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권력의 역사보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간다. 나는 소외된 목소리를 기억하고 싶다.”
책을 방송으로 소개하며 청취자들과 나누는 순간, 저는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공명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제 마음은 곧 '이런 시선이 바로 지금의 나'라는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책을 추천하는 일은 곧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나는 이런 문장에 반응해요”라는 취향의 선언이고, “내가 얻은 지혜와 회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라는 세대 간의 나눔입니다.
누군가가 내민 책을 받을 때, 우리는 단순히 한 권의 텍스트를 받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세계, 그 사람의 불안, 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건네받는 것입니다. 책은 그 자체로 ‘연결의 언어’가 됩니다.
저는 『디아스포라 기행』을 추천하며 저의 불안과 경계감을 털어놓았고,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추천하며 이름 없는 이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그 순간들은 단순한 독서의 차원을 넘어, 나를 고백하고, 또 누군가와 연결되는 따뜻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차례입니다.
당신이 지금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20-30대라면, 그것은 곧 당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기표현입니다.
“이 책이 좋다”고 말하는 순간, 사실은 “이것이 지금의 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40-50대라면, 그것은 세대 간 나눔의 시작입니다.
당신이 감동받은 책을 자녀와 동료에게 건네는 순간, 그것은 “나는 이렇게 회복했고, 이 이야기를 당신과도 나누고 싶다”는 초대가 됩니다.
책은 혼자 읽을 때는 고요한 위로가 되지만, 함께 나눌 때는 새로운 관계의 다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왜 그 책을 꼭 누군가와 나누고 싶으신가요?